가인이 아벨을 시기하여 죽인 후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가인이 답하였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그렇다! 우리는 우리의 아우를 지키는 자들이 맞다. 가인은 스스로 답을 알고 있었다. 형은 동생을 지키는 것이 마땅함을 안 것이다.
나는 동생을 둔 형이다. 우리는 딱 두 형제뿐이다. 동생은 미국에 살고 있지만 일 년에 두세 번 한국에 오고 있어 자주 만나는 편이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같이 자랐고, 내가 결혼한 후에도 오랫동안 함께 살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동생을 지키는 형이 돼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을 갖고 살았다. 우리 형제는 집과 학교가 멀어서 한 시간 넘게 걸어 다녔고, 그때의 기억은 너무도 생생하다. 나는 그때 허약했던 동생의 가방을 들고 다니며 동생을 지키는 형이 돼야 했다. 그것이 내 삶에서 살아있는 교육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몸이 약한 동생을 위해 형인 나는 동생을 보살폈고, 그것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후 나도 결혼을 했고 나 또한 형제를 둔 부모가 됐다. 공교롭게도 작은아들이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큰아들은 건강하게 태어나 잘 자랐지만 그 아이는 동생의 약함을 항상 자신의 삶의 문제로 여긴 것 같다. 배우자의 조건 중 하나가 장애를 갖고 있는 동생을 잘 돌볼 수 있는 여자였다.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큰아들이 내게는 듬직했고, 마치 내가 형으로서 동생의 가방을 들고 다녔던 것처럼 그 아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이 언제나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결혼 후 나는 동생에 대해 어릴 적 마음만큼 배려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 약한 동생은 아직도 내 마음에는 여전히 약해 보이고 지금도 동생을 보면 그 마음이 여전함에도 예전처럼 동생을 지키는 형의 모습은 아니다.
내 큰아들도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고 키운다. 제 동생에 대한 마음이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예전 같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며느리도 제 시동생 잘 돌봐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제 아이들 낳고 키우는 것이 우선이니 더 기대하기도 어렵다.
큰아들을 생각하며 내 모습을 보았다. 우리 집사람을 보며 우리 부모님의 마음도 알 것 같다. 착한 며느리로 보이는 내 아내도 실상 내 며느리 정도일 것이니 실망하고 불편해할 것도 아니다. 모두가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한다. 나도 그렇고 내 큰아들도 그럴 것이다. 우리 집사람도 그렇고 내 며느리도 그럴 것이다. 이제야 돌아가신 아버지의 마음을 알겠다. 이제야 나도 가인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라는 물음은 지금 하나님께서 내게 하시는 말씀이다.
유해근 목사
<(사)나섬공동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