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회 대한 사랑, 열정… 순종 길 선택
순교의 길을 간 신앙인의 삶… 원동력은 ‘사랑’
주기철 목사가 농우회 사건으로 의성경찰서에 압송되어 혹독한 고문과 악형을 받고 잠시 풀려나 평양 산정현으로 돌아와 기다리고 있던 교인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인간으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겠다는 생각만 하면 내가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가 나를 지고 간다. 그러면 골고다까지 이를 수 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능력으로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 주기철 목사의 막내아들 주광조 장로는 아버지가 마지막 검속을 당하는 모습을 증언했다. “일본 경찰이 아버님을 잡으러 왔을 때 아버님은 툇마루 기둥을 붙잡고 가지 않으려 하셨습니다. 그러자 어머님께서 아버님을 끌어안고 ‘목사님, 지금 문 밖에 교인들이 와 있습니다. 목사님은 개인이 아닙니다. 한국교회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하면서 함께 우셨다. 그러자 아버님은 ‘그래, 가야 할 길이라면 가야지요’ 하시곤 두 분이 손을 잡고 오랫동안 기도하신 후, 할머님께 하직 인사를 하시고 성경 찬송을 들고 문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기도’를 드린 후에야 십자가를 지고 나갈 수 있었다. 처음부터 순교를 위해 작정된 ‘영웅’은 없다. 주기철 목사는 우리와 하등 다른 것이 없는 연약한 육신의 소유자였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약 5:17-18).
그도 고문이 무서웠고, 죽음이 두려웠다. 다만, 고문이나 죽음도 막을 수 없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사랑의 열정이 있었기에 배반이 아닌 순종의 길을 선택했다.
주기철 목사뿐 아니라 그와 함께 순교의 길을 간 모든 신앙인의 삶을 가능케 했던 원동력은 사랑이었다. 그 사랑이 우리에게 있는 한 우리도 그 길을 갈 수 있음은 물론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0:38-39).
주기철 목사께서 작사하신 시가 찬송가에 실려 있다.
“서쪽 하늘 붉은 노을”
1. 서쪽 하늘 붉은 노을 언덕 위에 비치누나 / 연약하신 두 어깨에 십자가를 생각하니 / 머리에 쓴 가시관과 몸에 걸친 붉은 옷에 / 피 흘리며 걸어가신 영문 밖의 길이라네
2.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걸어가는 자국마다 / 땀과 눈물 붉은 피가 가득하게 고였구나 / 간악하다 유대인들 포악하다 로마 병정 / 걸음마다 자국마다 갖은 곤욕 보셨도다
3. 눈물 없이 못 가는 길 피 없이는 못 가는 길 / 영문 밖의 좁은 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 영생의 복 얻으려면 이 길만을 걸어야 해 / 배고파도 올라가고 죽더라도 올라가세
4. 아픈 다리 싸매주고 저는 다리 고쳐주고 / 보지 못한 눈을 열어 영생 길을 보여주니 / 온갖 고통 다하여도 제 십자가 바로 지고 / 골고다의 높은 고개 나도 가게 하옵소서
한국교회가 낳은 최초의 신학박사, 장로회신학교의 첫 한국인 교수인 순교자 남궁혁 박사는 순교자를 기리며 “끝까지 힘쓰자”(엡 4:13)라는 제목의 설교를 남겼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