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지혜] 엘리시움(Elysium)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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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chiller)가 <환희에 붙임>(An die Freude)을 쓴 1785년 유럽은 거대한 변혁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당시 독일은 수백 개의 영방국가(Territorialstaat)로 쪼개진 상태였고, 각 영지의 전제 군주들은 엄격한 계급 질서와 검열로 시민들을 압박했다. 실러는 이러한 분열의 시대를 목격하며,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은 정신적 해방에 있다고 믿었다. 

그는 친구 쾨르너(Christian Gottfried Körner)의 집에서 잠시나마 평화와 우정을 누리며 느꼈던 그 순수한 기쁨을 인류 전체의 화합으로 확장해 노래했다.

실러에게 환희(Freude)는 인간이 이기심과 증오를 극복하고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차원의 정신적 승리이며, 엘리시움(Elysium)의 실체다. 엘리시움은 그리스 신화 속의 사장된 낙원이 아니라, 환희를 통해 모든 갈등을 씻어내고 도달해야 할 지상의 유토피아다. 실러는 이 시를 통해 ‘엄한 관습’이라는 사회적 계급과 편견이 인간을 갈라놓는 현실을 비판하며, 환희라는 마법 같은 힘이 그 벽을 허물고 모든 인간을 형제로 결합할 것이라는 희망을 노래한다. 그리고 이것을 ‘별 너머의 신’이 다스리는 우주적 질서로 확장시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고 이루어야 할 세상이라고 보았다.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은 실러가 추구한 이 거대한 유토피아적 사상에 매료되어, 교향곡 9번 4악장에서 합창을 통해 청각적 엘리시움을 구현했다. 그는 악장 시작부에서 이전의 선율들을 거친 불협화음으로 부정하며 “오 벗들이여, 이런 소리가 아닙니다!”라고 일갈한다. 이는 과거의 방식으로는 인류의 고통을 해결할 수 없다는 단호한 선언이다. 베토벤은 아주 소박한 민요풍의 선율에서 시작해 수백 명의 목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장엄한 합창으로 확산시키며 보편적 형제애의 승리를 노래했다. 

하지만 이 숭고한 정신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파편화된 현실 앞에서 쓰라린 역설로 다가온다.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된다”는 선포는 인터넷으로 연결된 사회 이면의 혐오와 차별, 개인주의라는 ‘엄한 관습’의 벽에 막혀 있다. 현대인은 별 너머의 아버지를 바라보며 경외심을 회복하기보다, 자기 자신만을 응시하는 거울에 갇혀 있다. 실러의 ‘환희에 붙임’과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는 잃어버린 ‘엘리시움’을 회복하고 되찾으라는 이 시대를 향한 절규이며 눈물겨운 초대장이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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