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독교신앙의 세대 단절을 획책한 1915년 ‘개정사립학교규칙’
얼마 있으면 3․1운동 102주년 기념일이 돌아온다. 3․1운동은 1907년에 한국을 강타한 성령대강림 사건에서 불타오른 신앙의 에너지가 바깥으로 자동적으로 표출된 결과이다. 신앙 내연(內燃)-외연(外延)의 구도가 여기 확인된다. 즉 안에서 불타오른[내연] 신앙은 자동적으로 바깥으로 이어지게[외연] 되어있다는 사실이 그날 확인된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모든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성령세례를 받아야 함이 그날의 역사의 교훈으로 남겨지고 있었다. 이는 승천하시기 전 예수께서 남기신 마지막 유언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사도행전 1장 8절)
한편 1907년 성령대강림 후 3년여 뒤 한국은 마침내 일본에 합병되고 만다. 통감부 시절이었던 1908년 ‘사립학교규칙’을 발포한 일본제국주의는 합병 후 5년 뒤인 1915년에 ‘개정사립학교규칙’을 발포했다. 그런데 당시 사립학교라 함은 거의 다 기독교 사립학교였다. 따라서 개정사립학교규칙의 주요 골자인 사립학교에서의 종교의식 금지와 종교교육 금지는 곧 예배 금지와 성경교육 금지를 의미했다. 일제는 이렇게 ‘어린 세대’를 틀어쥐고자 했다. 어린 세대가 기독교신앙으로 교육되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겠다는 술책이었다.
2. 좌파계 경성학생연맹의 느닷없는 성경교육 금지 주장
그러나 일본은 3․1운동 이후 그들의 통치노선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개정사립학교규칙’ 발포 전에 세워졌던 사립학교들에 대해서 10년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있었는데, 그 기간에 미치기도 전에 이 규칙의 적용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시설 규준을 갖춘다는 전제에서 사립학교에서 예배와 성경교육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기독교신앙의 조용한 그러나 장쾌한 승리였다.
그런데 일제는 이렇게 기독교신앙의 단절 획책으로부터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는데 이번에는 좌파가 어린 세대에 기독교 신앙을 계승하는 것을 반대, 적극적으로 공격하고 나섰다. 충격적인 것은 이 좌파는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이었다는 것이다. 공산주의 유물론의 반기독교 세력에게 이념이 동족보다 우선이었다.「조선일보」1926년 7월 6일자에 이런 글이 실렸다. “종교적 교육의 반대 운동을 일으켜, 소위 교회와 학교의 분리운동의 제일보로서 각 학교의 성경과목의 폐지를 기할 것.”
가히 충격적이다. 10여 년 전 제국주의 일본이 ‘개정사립학교규칙’에서 획책한 어린 세대의 기독교신앙 계승 단절을 이 좌파계 경성학생연맹이 그대로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공산주의가 몹시 싫어하는 것이 제국주의 아니던가. 그런데 식민지 조선에서 공산주의자들은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본제국주의와 나란히 반기독교 전선에 서서 어린 세대를 노리고 있었다.
이때 기독교인 김창제는 외쳤다. “기독교를 반대하는 자는 즉 동포를 사랑하지 않는 자이다.”
류금주 목사
<(총회인준)서울장신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