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행복한 가족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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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너 3만원만 주고 가거라. 얘야, 너 3만원만 주고 가거라.” “없어요.” 80살이 넘은 아버지가 회사에 출근하는 아들에게 사정을 했지만 아들은 박정하게 거절을 하였습니다. 늙은 아버지는 이웃노인들과 어울리다 얻어먹기만 한 소주라도 한 잔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설거지 하면서 부자간의 대화를 듣다가 시아버지의 그늘진 얼굴을 훔쳐본 며느리는 잠시 무엇을 생각하더니 밖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한참 만에 버스를 막 타려는 남편을 불러 세워 숨찬 소리로 손을 내밀었습니다. “여보, 돈 좀 주고 가요” “뭐하게?” “애들 옷도 사 입히고 여고 동창생 계모임도 있어요.” 안주머니에서 5만 원 가량을 꺼내며 요즈음 담뱃값이 어떠니, 커피 값, 대포 값이 어떠니 하며 중얼거리는 남편에게서 돈을 빼앗듯 받아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아파트 양지 바른 벽에 기대어 하늘만 바라보는 시아버지께 돈을 몽땅 내밀었습니다. “아버님, 이 돈으로 마시고 싶으신 소주도 드시고 친구들과 대공원에도 가시고 또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 

며느리의 말에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는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고마워서 할 말을 잃은 채,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왔습니다. 남편이 애들을 보더니 “왜 애들 얼굴에 구정물 자국이 그대로 있어? 좀 씻기지 않구서?”하며 짜증을 냈습니다. 그 이튿날도, 또 그다음 날도 애들의 꼴이 점점 더 더러워져 가고 있었습니다. 새까만 손등이며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반드레하던 애들의 얼굴이 거지꼴로 변해 갔습니다. 

남편은 화를 벌컥 내며 고함을 쳤습니다. “여편네가 하루 종일 집에서 뭐 하길 래 애들 꼴을 저렇게 만들어 놓았어?” 남편의 화난 소리를 듣고 있던 아내도 화를 내며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 애들을 곱게 키워봐야 뭐하게요? 당신이 아버지께 돈 3만원을 냉정히 거절했듯이 우리가 늙어서 3만원만 달래도 안 줄 거 아니에요? 당신은 무엇 때문에 애들을 깨끗이 키우려고 해요?” 

아내의 말에 기가 질려버린 남편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늙은 아버지의 방문을 열었습니다. 늙은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서운함을 잊은 채, 어서 방으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늙은 아버지는 아들에게 “회사일이 고되지 않느냐, 환절기가 되었으니 감기에 조심해야 한다”고 어린애에게 말하듯 타이르고 있었습니다. 늙은 아버지의 더 없는 사랑에 아들은 그만 엎드려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독일의 속담에 “한 아버지는 열 아들을 키울 수 있으나 열 아들은 한 아버지를 봉양(奉養)키 어렵다”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배부르고 따뜻한가를 늘 관심을 가지고 살피지만 부모의 배고프고 추운 것을 자식들은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자식들의 효성이 아무리 지극해도 부모의 사랑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우리는 부모가 짐이 되고 효(孝)가 귀찮게만 생각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효는 옛날부터 가족을 사랑으로 묶는 밧줄’과 같은 것입니다. 효의 씨앗을 심고 가꾸는 일은 부모가 자식에게 효를 내리 실천해서 모범을 보이는 일이 꼭 필요합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치사랑’이 아니고 ‘내리사랑’이기 때문에 자녀들이 스스로 알아서 부모를 공경해 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낭만적인 환상입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회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치는 것처럼, 가정에서 부모들도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 경외와 함께 부모 공경을 가르쳐 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을 받게 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 첫 발걸음을 부모의 소중한 축일(祝日)인 부모님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귀하게 여기는 작은 일에서부터 출발하면 좋을 것입니다. 

이런 훈련은 비록 작고 기본적인 것이지만 이러한 기본을 근거로 ‘가족공동체’의 보다 견고한 결속과 화합, 그리고《행복한 가족공동체》의 분위기를 점차적으로 더욱 확대시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가능하면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독립된 가정을 이루고 사는 가정을 중심으로 그곳에서 가족 전체가 함께 모여 가정예배를 드릴 수 있다면 더 없이 큰 축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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