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에서 상주까지 (36)
상주교회는 중심지에서 조금 벗어나 있지만, 새로 조성된 시가지이기에 아담한 느낌을 가진 교회 건물을 새로 짓고 이전했다. 담임 곽희주 목사님은 특별하게 결혼이민자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목회하고 있는데, 특히 베트남 출신 결혼이민자들을 위한 특수 목회를 성공적으로 잘 하여 상주교회에서 베푸는 베트남 출신 결혼이민자들을 위한 특수 목회가, 한국교회의 많은 목회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상주교회에는 교회가 운영하는 아담한 카페가 있는데, 그곳은 한국에 정착한 베트남 출신 결혼이민자들이 그 카페를 운영한다. 곽희주 목사님께서 순례단원들을 그 카페로 안내하여 자신의 목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대접했던 커피가 참 감미롭고 향기로웠다. 곽희주 목사는 베트남 출신 결혼이민자들을 대상으로 한국정착 프로그램과 함께 신앙훈련을 베푸는데, 한국에 먼저 정착한 사람들이 후임들에게 좋은 안내자로서 그 역할을 잘 해 주어 지금까지 여러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베트남 출신 결혼이민자들은 대단히 생활력이 강하고 삶에 대한 애착심이 강하다고 곽희주 목사는 자랑했다. 이역만리 타향에서 살아가는 그분들이 서로 의지하고 한국교회와 사회의 좋은 일원이 되도록 안내하고 훈련하는 신앙교육이 좋은 열매를 맺게 되기를 희망한다.
상주 낙동나루터에서 상주 구시가지까지는 약 20km 정도 되는 거리이니 안 쉬고 걷는다고 가정해도 족히 5시간은 걸리는 거리이다. 걷고 쉬고 하면서 걷는다면 적어도 6시간 이상은 걸릴 것이다. 그런데 배위량은 어느 노정을 통하여 낙동에서 상주까지 걸었을까? 이 질문에 두 가지 문제가 전제되어야 한다.
1. 영남대로 길
2. 김서방의 집
그것은 배위량은 어느 특별한 노정을 걸으면서 탐험이나, 탐사 위주로 걷기 보다는 영남대로 길을 통하여 당시 영남지역의 큰 소읍을 찾아가 그곳에서 숙박하고 그곳에서 전도를 하면서 가지고 다니는 신앙서적을 팔았다. 그런데 낙동에서 상주로 가는 길에 김서방의 집에 들러 김서방을 위로한 후에 김서방이 대접하는 점심을 먹고 상주로 갔다. 그러므로 배위량은 영남대로 길을 걸어서 낙동에서 상주로 갔다는 사실과 낙동에서 상주로 가는 동안 김서방을 만나고 김서방이 대접하는 점심을 먹고 상주로 갔다는 사실을 기본으로 하여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이미 아는 사실을 전제(前提)한 후 추측해야 할 것은 추측하면서 낙동에서 상주로 가는 길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먼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적시하면 아래와 같다.
1. 4월 26일 수요일 밤에 낙동에서 잠을 잤다.
2. 4월 27일 오전에 상주로 가고자 낙동을 출발했다.
3. 낙동에서 상주로 가는 길에 반쯤 왔을 때 배위량은 “김서방이 한 작은 마을의 길가 근처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4. “김서방은 우리에게 식사하고 가라고 간곡히 권했는데, 거절하기 어려웠다. 그와 함께 성경을 읽고 토론을 한 뒤에 우리는 그곳을 떠났다.”
5. 그 때 “김서방은 언덕마루까지 따라와 [배위량 일행을] 배웅했다.”
6. “우리는 어젯밤 낙동에서 40리 떨어진 상주에 도착했다.”
7. “마부 한 사람이 몸이 안 좋아 낙동에 남겨두었다.”
8. 디명은 미상하나, –> 지명(地名)은 잘 알지 못하지만,
9. 부산서 믿기로 작정한 일인
10. 성명은 김기원이라.
11. 죵쳐병이 즁한 것을 보고(죵쳐병은 아마도 종기의 일종인 병),
12. 위로를 하고 섭섭히 떠나니라.
13. 4월 27일 영남대로를 통하여 상주로 갔다.
위의 내용에서 12가지 사실은 모두 역사적인 사실, 즉 배위량의 일기와 서경조의 글에 기인한 것이다. 그런데 13번 “4월 27일 영남대로를 통하여 상주로 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배위량이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배위량이 부산 동래에서 낙동까지 영남대로의 노정을 따라 왔기에 낙동에서 상주까지도 영남대로를 따라 걸어갔을 것이라는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배위량도 분명히 영남대로를 통하여 낙동에서 상주까지 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김서방이 영남대로 길에서 벗어난 어떤 지역에 살았다면 배위량이 낙동에서 상주로 가는 길에 그곳으로 가기 위하여 영남대로를 벗어난 노정을 통하여 김서방이 사는 마을로 갔다가 다시 상주로 가는 길을 선택하여 갔을 수도 있다. 이런 가정은 성립이 되겠지만, 상당히 개연성이 부족할 수 있다. 그것은 배위량 순회 전도단 누구도 상주 사람이 아니기에 무리한 노정을 걸어서 외지를 다녀올 만큼 김서방이 그들이 꼭 찾아봐야 할 인물이었는가를 상정해야 될 것인데, 배위량의 글이나 상황으로 봐서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감행할 개연성은 없다고 본다. 물론 그 김서방이 나중에 김재수가 되고 김기원이 되어 중요한 역사적인 인물이긴 하지만, 1893년 4월에 배위량이나 서경조에게 김서방은 그렇게 중요한 인물도 그들에게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기 전이었을 것이기에 배위량 순회 전도단이 모험을 무릅쓰고 영남대로 길을 벗어나 타지로 갔다가 다시 상주로 갔을 개연성을 없다고 본다. 위의 4번에 보면 낙동에서 상주로 가는 길에 반쯤 왔을 때 배위량은 “김서방이 한 작은 마을의 길가 근처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란 언급이 배위량의 일기에 적시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일기 내용을 보면 배위량 순회 전도단은 김서방이 그 지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 상태에서 낙동에서 상주로 가는 길에 우연히 김서방을 만났거나, 아니면 그가 그 지역에 산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 것 같다. 그 사실을 정확하게 알기는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필자의 생각에는 배위량 순회 전도단이 우연히 길에서 김서방을 만났다고 가정하는 것을 어렵다고 본다. 그리고 그때까지 기억을 못하다가 그 지역을 지나면서, 김서방이 그 인근 마을에 산다는 것을 은연중에 배위량이나 서상조가 기억을 하고 찾아갔을 개연성도 희박하다고 본다. 필자의 생각에는 배위량 순회 전도단 일행이 낙동에서 상주로 가는 길에 반쯤 와서 만난 어떤 사람들을 통하여 배위량의 모습을 보고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걸어 온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이 인근 마을에 부산을 방문한 사람이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부산에서 서양 사람을 만난 일이 있다는 사실과 기독교로 개종한 사실을 말하는 것을 듣고 그가 김서방일 것이라고 생각한 배위량이 그 김서방이 사는 곳이 영남대로 상에서 가까운 마을임을 알고 찾아 가서 만났을 개연성이 더욱 크다고 생각한다.
/배재욱 교수<영남신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