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목단상] ‘항상 추억하고 싶은 곳'(경신은 내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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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희 목사님 안녕하세요. 누군가 그렇게 얘기했죠. 마음을 둘 고향이 있다는 사실은 정말 축복받은 일이라고. 그렇습니다. 경신은 항상 제게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고향 같은 곳입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6년을 경신인으로 살았던 시간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어디에 있든지 경신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살고자 다짐하게 해 준 소중한 시간이었고요. 지금도 경신의 교훈인 ‘기독적 인격’은 제 삶의 가치관이 되어 예수님을 닮고자 소망하며 기도하고 있답니다. 고등학교 생활을 돌이켜 보면 이 작은 공간에 다 담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추억들이 떠오릅니다. 아침에 강당 문을 열고 하나님과 조용히 마주하는 시간은 하루를 승리할 수 있게 해 준 주께서 허락하신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첫 시간을 시작하기 전 하루 20분의 기도와 말씀은 제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제일 기다려졌던 시간은 점심시간 합창부 연습시간과 방과 후 로드스(Lord’s) 중창단 연습시간이었습니다. 귀한 합창부 친구들과 함께 하나님께 드릴 귀한 찬양을 연습하는 시간은 제 고등학교 생활에 있어서 제일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어디에 있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항상 경신 합창부와 중창단 자랑을 빼놓지 않는답니다. 1학년 때 첫 무대로 예술의 전당에 선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고 막상 무대 위에서는 너무 떨려 내가 맞게 부르고 있는지도 모른 채 발표회가 끝나버렸던 기억, 첫 찬조 출연을 앞두고 로드스 친구들과 다같이 무릎 꿇고 함께 잡은 두 손으로 간절히 기도했던 기억,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주의 크신 은혜’, ‘생명강’을 부르다 보면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 들고 박수갈채를 받았던 기억들…. 이렇게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들이 있는 한편 시련의 시간들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고2 때 부모님이 이혼하신 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왜 이러한 일들이 저에게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없고 절망적인 생각도 들었지만 아침마다 저를 지켜주는 기도 시간에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저를 성숙한 사람으로 키우시고자 하심을 알게 하셨고 주께 드리는 찬양과 함께 기도해 주었던 친구들이 있어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김종희 목사님, 고등학교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환하게 밝아오는 것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부족한 자를 경신의 한 사람으로 부르시고 귀한 청년의 때를 주님과 함께 하게 하시고, 좋으신 여러 선생님과 친구들을 허락하셨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목사님께서 저희 92회 졸업생들을 위해 기도를 쉬지 않으셨던 것처럼 지금도 계속해서 후배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현재 한국외대 국어국문학과 석사학위 중이고 지금은 군대 대체복무로 해외에 나가 봉사하기 위해서 외교통상부 산하 국제협력단 한국해외봉사단으로 국내훈련 중에 있습니다. 11월 14일에 교육이 끝났고 12월 5일에 미얀마로 출국해 2년 간 그곳 미얀마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게 됩니다. 목사님, 항상 건강하시고 주님의 평안이 목사님과 그리고 모든 경신인들에게 언제나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글을 쓴 노채환 군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3년 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회에 참석한 학생이었다. 혹시 내가 늦을 때에는 내 대신 강당문을 열도록 부탁을 할 정도로 성실했다. 아침 기도회가 끝나고 강당 화분에 물을 주는 일이며 추운 겨울에는 일찍 와서 강당 긴 의자에 2, 30개의 작은 방석을 놓는 일을 도맡아 하곤 했었다. 고 2때 그렇게도 힘든 시련이 있었는데도 교목인 나는 알지도 못하고 그저 착실한 학생으로만 생각하고 그의 고통을 함께 나누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무쪼록 미얀마에서의 경험이 그의 삶에 그리스도의 향기로 더욱 풍성해지기를 기도한다.

/김종희 목사
• 경신 중ㆍ고 전 교목실장
• 전 서울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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