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쉼터] 설거지를 잘하자

Google+ LinkedIn Katalk +

나는 20년 넘게 아내와 둘이서만 살아가는 부부로, 매일 아침은 샐러드와 과일주스 그리고 토스트로 해결하고 있다. 식사 준비는 당연하게 아내가 담당하기에 자연스럽게 설거지는 내 몫인데, 몇 개의 그릇과 수저 등을 씻는 일이기에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지만, 내 나름대로 깔끔하게 한 후에는 아주 대단한 일이라도 치른 것처럼 흐뭇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이렇게 일상생활에서도 ‘설거지’를 잘하면 성취감에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 정상이다.
예전 젊은 시절 교회에서 만나 최근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선배가 있었다. 개성에서 태어나 1·4후퇴에 남하해서 살았는데 가정형편이 여의찮아 고등학교만 졸업하고는 생활전선에 나섰지만, 항상 ‘개성사람’의 자부심을 내세웠던 사람이었다. 그는 일찍이 뉴욕으로 이민을 가서 작은 세탁소를 경영했는데 자신의 분수를 알았기에 큰 욕심을 내지 않고 성심껏 일을 했다. 그는 아침 6시에 문을 여는 세탁소에 매일 30분 전에 도착해 세탁소 인근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근처 도넛가게에서 도넛과 커피 한 잔을 사갖고 와서 이를 먹으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했는데 세탁소를 운영하는 33년간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착실하게 계속했던 일과였다. 이렇게 매일을 긍정적으로 살던 그가 코로나의 여파와 나이가 들어감에 따르는 병으로 세탁소를 폐업하게 되었다. 그는 이따금씩 주고받는 대화 중에 항상 「설거지를 잘하자」라는 말을 강조했고, 이에 동의하는 나와는 속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주장을 얼마나 확실하게 실천했는가를 그가 사망한 후에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장례식에 드는 비용을 현금으로 남겨두었고, 그리고 그가 칠순 잔치 때에 입었던 한복을 자신의 수의로 사용해 달라는 당부도 남겼다. 그 외에도 그가 죽은 후에 처리해야할 일들을 꼼꼼하게 적어놓는 치밀함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는 그리 큰 고생을 하지 않고 병원에 입원한지 두 주일 만에 깔끔하게 그의 생애를 마감했다. 우리는 그의 장례식장에서 ‘개성사람 아니라 할까봐’ 하며 그의 사망을 애도하며 한편으로는 죽음을 예견하고 뒷마무리를 깨끗하게 정리한 그의 행동을 칭송하기도 했다.
현존하는 정치가 중에 정말로 존경과 사랑을 받는 사람으로 독일의 메르켈 총리를 꼽는데 많은 사람들이 주저하지 않는다. 옛날 동독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난 그는 통일된 독일의 총리로 16년간 재임하면서 독일인은 물론 전 세계인의 지도자로서 역할을 잘 감당하였다. 그는 총리 시절에도 총리공관을 사양하고 총리가 되기 전에 살았던 아파트에서 살았으며, 당연하게 퇴임 후에도 살아가기를 실천하고 있다. 여성으로서 외모에 그리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그 어려운 국제사회에서의 험난한 문제들을 그의 뚝심 있는 설득력으로 해결하여 명실상부한 세계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러면서 퇴임식도 없이 정치일선에서 물러났는데 이때 연출되지 않고 자발적으로 6분간 전 국민이 각자의 발코니에서 아쉬운 이별의 박수를 보냈다. 이같이 기적 같은 사랑의 메시지를 받는 감격스런 장면을 연출하게 만든 것은 그가 진정으로 ‘설거지를 잘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우리에게는 정말 꿈과 같은 너무나 부러운 지도자의 퇴장 장면이었다.
태어나는 것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듯 죽는 것도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운명일진대, 언제나 이를 예상하며 평소에 깨끗하게 설거지를 하는 습관을 지니는 생활자세가 필요하다 할 수 있다

/백형설 장로(연동교회)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