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의 길] 목양자의 반성문 <1>

Google+ LinkedIn Katalk +

목회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펼쳐 가는 하나님의 사역 과정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오늘도 하루도 쉬지 않고 우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뜻을 알지 못하고 때로는 묻지 아니하며 목양의 현장에 몰두하는 어리석음을 고집해 왔습니다.  Covid19의 시대는 ‘새로운 목양의 변곡점’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동안 ‘모이는 교회’에 전력했다면 앞으로의 시대는 ‘흩어진 교회’ 즉, ‘현장성이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Covid19는 어떤 한 과학자의 잘못된 일탈 행위로 기인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그 속에 숨어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회복을 기도해 왔습니다만, 진정 옛날(Covid 이전)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세상은 돌아갈 수 없다고, 아니 돌아가서는 안된다며 변혁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옛날을 그리워합니다. 하나님은 그동안의 교회 부흥보다, 교회의 건물의 크기보다, 진정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그 한 사람의 교회 됨’”을 기대하시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람들이 그토록 열망하는 부흥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흥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현장성을 회복하는 교회입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와 보라!” “Come and see!”를 소리쳤습니다. 세계의 인정을 받으며 한국교회 성장을 자랑해 왔습니다. 그 안에 힘의 카르텔이 형성되고, 기득권을 잡으려는 패권 싸움이 세상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교회의 문제를 세상이 걱정하는 시대에 살아갑니다. 초대교회 시대의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기대와 희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는 기대치가 다 무너졌기 때문에 실망도 큽니다. 세상은 교회가 교회 답기를 기대하며, 교회 만큼은 그렇게 되라고 아우성입니다. 세상 앞에 공공성을 세워가는 교회를 꿈꾸며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교회는 작은 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한 상을 하늘에서 잊지 않겠다”시던 주님의 교훈을 마음에 새기며, ‘작은 자에게 흘러가는 목양’이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흘러가는 것입니다. 물의 흐름이 멈추면, 오수가 되고, 썩고, 부패해서 악취가 나고, 생명체가 생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물이 흐르기를 시작하면 정화되고, 생명력이 다시 살아납니다. 

오늘 교회가 흐르는 기능이 살아 역사한다면, 성도들이 복음의 흐름에 동참하고 동역한다면 ‘예수님의 생명력’은 우리를 통해 세계 열방을 향해 흘러갈 것입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장소적 개념에서 ‘시간적 개념’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장소에 모여서 예배했는데 삶의 현장에는 그 어떤 변화도 없는 예배도, 기도도, 삶도 없는 무늬만 그리스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장소’를 잡는 성도가 아니라 ‘시간’을 잡을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보는 사람이 없어도, 챙겨주는 이가 없어도, 언제 어디서든지 예배할 줄 아는 ‘나는 예배자’입니다. 그 사람이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더이상 성 쌓는 교회, 건물에 투자하는 교회가 아니라, 길 닦는 교회, 삶의 장에서 하나님을 대면하고 예배하는 성도를 길러내야 합니다. 

기도 금지령 앞에서도 하나님 앞에 전에 하던 대로 기도하는 다니엘과 같은 미래 세대들을 세워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왜 무슬림의 확장을 두려워합니까? 그것은 그들의 ‘정시 기도’와 ‘다산’ 때문입니다. 현장성이 있는 “생활 신앙인” 삶을 살고, 그 현장을 예배의 장으로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 교회가 강한 교회입니다. 

김태승 목사

<은성교회>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