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속담에 정직이 최선이 정책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반드시 정직한 사람이 복을 받지 못하고 세상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를 우리는 무수히 경험한다. 그렇다면 이 속담은 틀린 것인가?
경제학에는 게임이론이라는 분야가 있다. 20세기 최고의 수학자라고 일컬어지는 존 폰 노이만이 개발한 게임이론은 가위바위보 게임처럼 서로 경쟁하는 상황에서 최선의 전략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이론이다. 이 게임이론으로 과연 정직이 최선의 전략인지를 분석해 보면 아주 흥미로운 결과를 얻게 된다.
여기 두 사람의 상인이 경쟁한다고 하자. 각자는 정직하게 좋은 물건을 싸게 팔 수도 있고, 나쁜 재료를 써서 부정직하게 행동할 수도 있다고 하자. 이때 상대방이 부정직하다면 나도 부정직하게 행동하는 것이 내게 이익이 된다. 또 상대방이 정직할 때도 역시 내가 부정직하게 속임수를 쓰는 것이 유리하다. 그렇다면 각자 부정직하게 행동하는 것이 자신에게 최선의 정책이 되어버려서 결과적으로 사회는 부정직한 상인들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사실 모두 정직한 사회가 모두 부정직하게 행동하는 사회보다 더 살기 좋은 것이 분명한데도, 각자 자기 이익을 쫓다가 모두 부정직하게 행동하는 불행한 사회가 되어 버리는 사례는 많다. 많은 윤리학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가장 큰 병폐가 정직하지 못한 것이라고 개탄한다.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믿지 못하고, 서로 믿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부정직이 정당화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이 부정직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정직이 보편적 윤리가 되는 사회는 어떻게 가능할까? 그리고 이렇게 부정직이 일상화된 원인은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근대에 들어와 서양문물이 밀려들어 오면서 서양제국주의와 중국과 일본 등 강대국의 침략에 시달리며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편법과 부정직이 일상이 되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역사적인 경험에 의해 일상화되어 버린 부정직으로부터 벗어나 정직사회로 이행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게임이론은 역사적인 경험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사회가 혼란하고 변동이 심할 때는 인간관계가 일회적이 된다. 상대방을 다시 만날 기회가 없다면 그 상대방에 대해 속임수를 써서라도 지금 당장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동이 유리한 전략이 된다. 그러나 사회가 안정되어 서로 동일한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만나서 교류하는 관계가 일상화되면 정직이 더 유리한 전략이 된다. 예를 들어 뜨내기 손님을 상대로 하는 상인은 그 손님을 다시 만나지 않을테니 적당히 속임수로 더 큰 이익을 벌면 되지만, 단골손님을 상대하는 상인은 정직하다는 평판을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당장 이익이 적더라도 정직하게 행동하는 것이 유리하다.
실제 자본주의의 역사를 살펴보면 자본주의 초기에는 어느 나라든지 상인이나 기업가들이 권모술수로 서로 속이고 부정직하게 행동해서 부당이득을 취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가 발전하면서 서로의 거래관계가 반복되고 신뢰와 평판을 중시하게 되면서부터 상거래의 부정직성을 점점 줄어들고 정직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상거래 윤리가 확립되게 된다. 사회의 정직성은 단계적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정직성과 같은 시민의식은 윤리교육이나 사회적 운동에 의해 개선되기보다는 사회가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결국 좋은 사회, 성숙한 사회란 모든 사람에게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 되는 사회가 아닐까.
김완진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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