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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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라는 말과 그 말이 품은 무서운 뜻이 나에게 처음 전달된 것은 유감스럽게도 교회를 통해서가 아니라 『The Martyred』라는 제목으로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된 재미 한국인 작가 김은국씨의 소설을 통해서였다. 소설은 평양에서 순교한 목사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진실을 찾아가는데 초점이 맞춰졌었는데 내가 처음 예수를 믿게 된 것이 1970년대 말경이었으니 그보다 훨씬 전에 소설이 나왔을 때 그것을 읽으며 순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는지는 자신이 없다. 

이후 기독교인으로서 신구약성경으로부터 수많은 순교의 사례들을 알게 되면서 우리는 순교가 있는 곳에 교회가 부흥한다는 섭리를 말하며 교회학교 학생들에게 누구누구 순교자의 이름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스데반, 바울, 베드로 그리고 19세기 대동강에 성경을 내려놓은 토마스 선교사… 하지만 오늘의 자유로운 세상에서 순교는 전혀 발생할 수 없는 사건이라는 생각에다 순교가 끊어져서 이 땅의 교회가 부흥하지 못하는가 하는 의구심 같은 것도 간혹 지녀왔다. 

지난 주 지방여행 중 교인이 아니면서 강권하는 친구를 따라 그의 고향 전남 영광군에 들러 70여 년 전 참으로 참혹한 기독교인 집단 학살의 현장을 찾았는데 새삼스레 순교의 진실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곳에 큰 바위 ‘77인 순교 기념비’가 서있고 마을 언덕에 기념교회가 자리하고 있었다. 목사님을 만나고 장로님의 안내로 한편에 복원된 옛 교회를 바라보고 기록영상물을 보면서 그때 어떤 일이 있었던가 감회에 내내 가슴이 떨렸다. 

6.25 전쟁이 발발하고 한달이 못 되어 공산군이 영광일대를 점령했다. 예로부터 염전이 많아 염산면이라는 이름을 얻은 이 고장의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적 치하에서도 밤에 모여 예배를 드리기도 하며 고난의 날들을 보냈다. 9.15 인천상륙이 성공하고 유엔군이 목포항에 상륙해 드디어 영광땅이 국군에 수복되자 교인들을 중심으로 한 주민들이 태극기를 만들어 들고나와 기쁨에 겨운 환영행사를 했다. 그러나 이곳 사정은 다른 지역과 달랐다. 

국군이 다른 지역 작전을 위해 떠나자 인근 산악으로 도망했던 지방 좌익들이 바닷가 염산면으로 돌아와 보복을 시작했다. 10월 7일에 먼저 염산교회를 불태웠다. 불을 끄러 나온 교인들을 붙잡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제방 수문으로 끌고 가서 각자의 목에 돌을 매달고 물속으로 집어넣었다. 이런 무법천지 속에서 이듬해 1월 초까지 석달 동안에 교회 성도의 3분의 2에 가까운 77인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전쟁 중 전국에서 한 교회가 낳은 순교자로서 가장 큰 숫자라고 한다. 

“순교자들은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았고 돌아갈 천국을 소망하고 있었기에 죽음 앞에서도 담대하며 평안할 수 있었고 공산세력에게 죽임을 당하는 자신보다는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날뛰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고 찬송하며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고 염산교회 임준석 담임목사가 펴낸 책 <천국소망 순교신앙>(쿰란출판사)은 적고 있다. 우리들 말고도 여러 곳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교회 언덕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그곳으로 떠난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모두 ‘내가 그 때 그곳에 있었더라면’하는 생각에 잠겼으리라. 과연 그들처럼 당당하게 찬송하며 바다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을까? 오늘 나는 순교자의 길을 가고 있는가? 

김명식 장로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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