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어제의 일도 중요하고, 실존을 중시해야 할 오늘의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내일에 벌어질 일을 중시해야 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 이유는 인간은 미래에 희망이 있으면 살맛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과거의 향수병에 걸려 있고, 현재 아무리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지라도 미래가 없는 개인, 미래가 없는 국가는 의욕이 상실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되었다. 그 당시 해방의 기쁨을 맞이한 국민들은 기뻐 뛰며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 기쁨도 망각한 채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38선 분단으로 남북한 교류가 가로막히고, 해방된 지 5년만에 6‧25동란을 겪게 되었다. 당시 남한의 이승만 정부는 북한의 이런 돌발적 남침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에 남한 국민들은 남쪽으로 피난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국군은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유엔군의 도움이나 1950년 9월 15일 맥아더(MacArthur)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지 못했더라면 대한민국의 존재는 사라졌을 것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김성일과 황윤길이 일본에 통신사로 파견된 바 있다. 동인 출신 김성일은 선조대왕에게 보고하기를 일본의 조선 침략의 징조는 찾아볼 수 없다고 했고, 서인 출신 황윤길은 침략의 징조가 보인다는 것이다. 조정에서 당쟁은 계속되고, 미래에 대한 대책은 소홀했다. 당대의 유학자 이율곡 선생은 십만양병설을 주장하면서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을 강조했다. 조정의 중신들은 여전히 현실적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율곡의 개혁론에 이의를 제기하던 동인 측의 도승지 유성룡은 “평화시에 군사를 양성하는 것은 호랑이를 길러 우환을 남기는 것과 같다(養虎遺患:양호유환)”며, 반대하고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임진왜란을 당하게 되었다.
한반도 분단 후 끊임없이 군사력 증강에 주력해 오고 핵무기 개발까지 가중시키고 있는 북한은 경제적으로 낙후된 후진성을 초래하고 있다. 따라서 남북한의 경제 격차는 30배 이상 벌어져 있다. 남한은 세계 10대 무역국으로 성장했고, 세계인들이 인정하는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 국민들은 북한이 6‧25동란과 같은 승산 없는 전쟁을 일으키겠는가 방심하는 국민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국민이 있다면 그것은 너무나 낙관적 현실인식일 것이다. 북한은 북한 자체로서가 아니라 대륙의 중국과 러시아를 등에 업고 적화통일정책을 절대로 폐기한 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대북 보호정책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앞으로 노리고 있는 것은 남한 내부의 약체 정부의 등장과 분열주의적 정국의 혼란, 미국 정부의 내부 갈등과 경제적 침체로 인한 단계적 미군 철수, 북한과 중국에 유리한 국제정세 조성 등이다.
토인비(A.J. Toynbee)의 주장처럼 도전에 대한 적절한 응전을 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예컨대, 북한이 계속 핵무기 보유를 고집하면서 최전방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한다든가, 미국이 내부 사정으로 인해 최악의 경우에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할 경우, 남한은 앞으로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장기적인 대처가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다. 그 이유는 미국이 대한민국을 영원히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통일을 위해서라도 핵은 핵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에 국민적 담론과 지혜가 요청된다.
조인형 장로
– 영세교회 원로
– 강원대 명예교수
– 4.18 민주의거기념사업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