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회사에 신입사원에게 시험 문제를 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밤에 차를 몰고 가다보니 버스 정류장에 세 사람이 있다. 차가 자주 없는 곳인데, 딱 한 사람만 태울 수 있다. 누구를 태우겠는가? 한 사람은 죽어가는 노인이고, 다른 사람은 자신을 살려준 의사이다.
또 한 사람은 한 평생 그려오던 여자이다. 수험생들은 머리를 짜서 생각했다. 노인을 태워 가면 노인은 가다가 죽을지 모른다. 의사를 태우고 가고자 하니 다음에도 신세 갚을 날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세미인은 지금은 놓치면 안 된다. 그래서 대부분 미인을 태우고 가겠다고 선택했다. 아니면 노인이나 의사를 선택했다. 이들은 모두 탈락이었다.
이백 명 중에 한 명이 정답을 말했다. 그 사람은 ‘병원의사에게 자동차 키를 주고 노인을 태우고 가서 치료하게 한다. 그리고 자신은 아름다운 여자와 버스를 타고 간다’고 답했다. 그 사람의 지혜는 키를 버리는 데서 나온 것이다. 그 시험 문제는 버려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을 찾은 것이기 때문이다. 선한 목자로 오신 예수님은 생명을 얻기 위해서 생명을 버리셨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다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핍박했다. 예수님은 병들고 고통스러워하는 한 양을 돕고자 하는 선한 목자이시다. 바리새인은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서 양들을 이용했다. 우리는 양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 선한 목자 예수님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모든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군을 전역하고 대전신학대학교 3학년에 편입하게 되었다. 전역을 앞두고 교통사고로 사망한 형의 법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대원 시험을 접게 되었다. 그때 신학대학교로 편입할 것을 권고하신 고향교회 목사님의 뜻을 따라 총각 서리집사로 교회를 섬기면서 대전신학대학교로 편입해 2주 동안 공부했다.
고아와 같은 입장에서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학교에 편입했는데, 당시 교회에는 얼라인먼트도 잡히지 않은 12인승 그레이스를 운전하며 교회학교와 성도들을 모시고 다니면서 열심히 교회를 섬겼던 것 같다. 그런데 3월 중순 경에 비가 내리는 블랙아이스 도로를 조심해서 운전하면서 아이들과 성도를 태우고 교회로 가다가 상대방 차선에서 커브 도로를 무리하게 추월하려는 승용차를 피하려다 그만 승합차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기억을 잃고 차는 폐차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나마 감사하게도 차에 있던 6명중 5명은 논바닥으로 튕겨져 나갔고, 한 사람은 마늘 밭으로 튕겨져 나가 약간의 타박상만 입어서 큰 물의는 없었던 것 같다.
문제는 운전하다 기절한 내게 있었는데, 병원에서 3차에 걸친 수술을 받고, 6개월 동안 입원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모든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학대학교에 편입했고, 군에서 모은 돈으로 신학교를 마치고 목사가 되려는 생각이 일시에 무너지고 만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하나님의 반전이 있었다. 죽었다 살아났다고 생각한 가족들이 신학교 다니는 것을 허락했고, 군에서 모은 돈으로 치료비를 거의 해결했으며,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 것을 깨우쳐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의 문이요 선한목자이신 주님만 바라보게 하셨다.
병상에 누워 모든 것을 잃은 것과 같은 가난한 신학생에게 하나님께서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는 말씀으로 위로하시며 심지를 견고하게 하셨다. 신학대학교를 다니면서도 까마귀와 같은 성도들과 선배들의 뜻하지 않는 도움과 가족들의 도움으로 잘 졸업하게 하셨다. 장로회 신학대학 신대원도 지금 함께 하는 아내와 교회의 도움으로 무사히 졸업해 지금 작은 교회라도 섬기게 인도하셨다.
11-13절에는 목숨을 버리는 목자이신 예수님의 모습이 나온다. 목자는 목숨을 걸고 양을 노리는 이리나 늑대와 싸운다. 목자는 자신의 생명보다 양들을 더 사랑한다. 선한 목자는 목숨까지 희생한다. 예수님은 양들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생명을 희생하셨다. 죄인들을 위해서 생명을 아낌없이 내어놓으셨다. 예수님은 하늘영광, 부귀영화를 버리고 생명도 버리셨다.
우리가 선한 목자가 되기 위해서는 능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요, 지혜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인가를 버려야 한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 목숨을 버리는 길을 가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양을 사랑하는 목자의 모습으로 양을 위해 목숨도 버린다고 하셨다(14-15절).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은 목자가 양을 알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양을 안다는 것은 양을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고 신뢰한다는 말이다. 사랑은 아는 것과 일치한다. 사랑은 손익을 따지지 않는다. 사랑은 이익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숨을 버리는 것을 깨닫게 하실 때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알게 하신 예수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아시고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으며 감사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사탄과 사망에서 건지고자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을 온전히 버리셨다.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고 돌보시는 그 은혜를 새기며 두 번 세 번 거듭 생명을 연장하시는 주님 뜻대로 살아야 할 것이다.
이광현 목사
<총회부흥전도단 부단장/감사, 승원교회 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