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장편소설] 입원과 사랑의 고백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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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은 또 역시 말이 없다. 그저 씨익 웃고만 있다. 한 사람은 모든 것이 적극적이고, 또 한 사람은 너무나 소극적이다. 그래서 이들은 어쩌면 좋은 짝이 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인연이란 운명의 밧줄을 힘있게 잡고 천천히, 그러면서 행복의 날개를 활짝 펴면서 울창한 계곡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케이블카 하우스에 대기자들이 여러 명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후 두 사람은 케이블카를 타고 도쿄타워 전망대에 도착했다. 도쿄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동경시내는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동양의 런던이라는 도쿄는 몹시 잘 다듬어진 진주같이 빛나고 있었다. 전망대 휴게소에서 두 사람은 어린아이 같이 아이스크림을 손에 하나씩 들고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몽롱한 구름위를 걷는 듯 참 행복한 기분에서 허영숙이 먼저 말을 꺼냈다.

“춘원! 내가 오늘 새로운, 우리의 결혼 약속을 기념하는 선물 계획을 제안하려는데 춘원이 기꺼이 받아 주면 좋겠어요.” “말해 보시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들어 주겠소.” 지금 춘원도 기분이 한껏 들떠 있었다.

“꼭 들어 줘야 해요.” “어서 말해 보라니까, 들어 준다니까.” “우리 빠른 시간내, 베이징(北京)으로 여행 가요. 건강도 추스르고 아픈 머리도 식힐겸. 어때요?” 허영숙은 북경 여행의 선물을 이렇게 던지고는, 얼른 춘원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허허….”

춘원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그 특유의 웃음을 흘리며 타워 아래로 흐르는 구름을 지그시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서 답해요. 어서요.” “알았어요. 그렇게 해요. 내 빨리 일하던 주변을 정리할게요.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니깐.” “아이 좋아라. 당신 정말 고마워요.” 하며 허영숙은 춘원의 빰에 그녀의 입술을 갖다 대고 힘껏 내려 누르고 있었다.

사랑의 밀월 여행(密月旅行)

춘원은 허영숙과 베이징 여행을 위해 미리 몇가지 준비를 했어야 했다. 매일신보 특파원 자격을 얻어 떠나기로 했다. 그는 특파원 신분증으로 한반도 남부지역 오도답파여행(五道踏破旅行)을 하는 것으로 준비했다.

드디어 두 사람은 그들의 밀월여행 준비를 마쳤다. 그래서 두 사람은 1918년 10월 일시 귀국, 여행 준비를 잘 해서 제물포항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배를 드디어 탔다. 제물포항은 이때 강화도 조약과 제물포 조약으로 인해 개항됐던 항구다. 서해로 열린 수도의 길목이라는 숙명 때문에 끊이지 않고 세계사의 영욕이 교차되었던 항구가 또한 제물포항이다.

허영숙이 세계 여러 곳을 마다하고 베이징을 선택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베이징에는 ‘북해’ 공원이 있기 때문이다. 북해 공원은 베이징 내성에 포함되어서 원명원과 이화원이 외세침략으로 파괴되거나 폐허가 되었을 때에도 온전하게 보전된 곳이 이곳이다. 800년 동안 큰 파괴없이 보존된 황실 정원이라는데 특별한 가치가 있는 공원이기도 하다. 이곳 북해 공원의 가장 큰 매력은 일반 관광객뿐만 아니라 봄부터 가을까지 이곳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여름이면 호수에서 배를 타고 데이트하는 연인이 많고 이곳에서 자금성을 내려다 보면 눈아래 펼쳐지는 전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푸른 숲과 파란 호수는 베이징 도심 속의 오아시스임에 틀림이 없었다.

10월의 가을 끝자락, 베이징 북해 공원에서 불타는 20대의 두 연인은 행복감에 취한채, 자금성을 유유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울긋불긋 만색을 펼치는 화려한 단풍과 파란 호수는 그야말로 한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다. 맑은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저 멀리 기러기 떼들이 꺼욱 꺼욱 줄을 지어 어디론가 평화롭게 날아가고 있었다.

채수정

 (본명 채학철 장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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