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의뢰로 목회데이터연구소에서 발표한 통계를 보면 아주 특별한 점이 발견된다. 2009년부터 2020년 4회에 걸친 개신교에 대한 신뢰도 결과를 보면 26.1%에서 18.9%까지 하락했다. 2020년 가톨릭 30.0%, 불교 26.2%에 비하면 현저하게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 다른 설문 문항을 보면 신뢰도 결과가 의아하다. 사회 봉사활동 적극 수행 종교에 대한 문항에서는 개신교가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같은 기간의 결과를 보면 개신교 35.7~42.1%, 가톨릭 32.9~39.0%, 불교 7.7~11.6%로, 가톨릭과 불교보다 비교 우위를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긴다. 봉사활동이 높은 수준이라면 당연히 신뢰도가 높아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다음 설문의 결과에서 그 이유를 찾아낼 수 있다. 세상과의 소통과 사회 문제와 사회 통합에서의 개신교의 역할을 잘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2020년의 결과를 보면 68%가 부정적으로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고, 한국교회는 교회 밖 세상과 잘 소통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긍정적 결과가 30% 초반에 불과하다.
개신교의 신뢰도가 매우 낮은 수준을 보이는 이유 중 하나를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개신교는 대한민국 사회와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한국교회에 한 가지 과제를 던져준다.
무엇보다 우선 선교적 관점의 문제 즉, 교회의 성장이 선교의 주된 목적이 된 것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교회가 그동안 지역 사회에 대해서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었고 복지적 차원에서 상당한 역할을 감당해 온 것은 사실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낮은 신뢰도의 결과를 보이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회적 활동들이 선교적 차원이나 교인 수 증가라는 전제를 가지고 실행해 온 측면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지역 사회에서의 활동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이타적 사랑과 거리가 먼 상황을 드러냈다. 지역 사회를 위한 사랑과 봉사를 교회 성장의 한 방편으로 오해하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앨런 허쉬의 “교회는 지역 사회와 연대성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지적은 한국교회에 매우 중요한 과제로 나타나고 있다.
나아가 교회론적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교회는 세상을 위해 존재한다. 디트리히 본 회퍼의 “교회는 타자를 위해 존재한다”는 명제를 아픈 마음으로 받아내야 한다. 교회는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해 존재한다. 하나님은 이 땅에 교회를 존재하게 하시고 교회를 세상에 파송하시는 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세상에 파송 받은 공동체다.
필자가 섬기는 성암교회는 지역 사회와 관련해서 세 가지 원칙을 가지고 개발했고 사역하며 그 원칙을 놓치지 않으려고 힘쓰고 있다. 첫째는 지역사회와 관계에 있어서는 전문가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성암교회는 컨설팅이라는 기법을 통해서 이 일을 이뤄 가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신학과 신앙을 점검하고 지역 사회와 관계의 전문성을 확보했다. 둘째는 지역 사회를 향한 사역을 네트워킹 속에서 실행하고 있다. 지역에 다른 교회들과 연합해 교육법인을 세우고 그 법인을 통해 지역 사회와 관계하고 교회의 일이 지역 사회 안에서, 지역 사회의 일이 교회 안에서 이뤄질 수 있는 체계를 형성했다. 셋째는 지속적 설득과 변화 추구다. 교회가 실시하는 사역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역에 대한 지속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역에 대한 설득력이기도 하다. 나아가 사역의 방식, 사역자, 사역의 종류 등이 사회적 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 있는 체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은 지금도 교회를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은 여전히 교회를 지역 사회에 파송하고 계신다. 그런 차원에서 세상과의 관계 맺기는 신학적 차원, 선교적 차원, 교회론적 차원, 그리고 사회과학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조주희 목사
<성암교회,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