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어떻게 인도하시는가에 대한 대표적인 세 가지 관점이 있다. 첫째, 청사진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는 것이다(Blueprint perspective). 하나님께는 우리의 인생을 향한 이미 정해진 청사진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상황을 통해 우리를 그 방향으로 인도해 가신다는 것이다. 각자의 인생에 대한 단 한 가지의 완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주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외적인 상황과 표지이다. 상황이 열리고 닫히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 정해진 계획대로 이끌어 가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오직 하나만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선택이기 때문에 늘 자신은 하나님의 뜻 바깥에서 살아가는 듯한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관점만으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정확하게 얻을 수 없다. 상황이 열린다고 다 하나님의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상황이 열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상황이 닫히는 것은 무조건 하나님의 뜻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둘째, 지혜를 통한 인도하심이라는 관점이다(wisdom perspective).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에 주신 도덕적 기준에 따라서 우리에게 주신 지혜를 가지고 자신이 판단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자신의 지혜로 판단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는 것이다.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아주 상세했다. 그러나 교회 시대의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에게 대부분의 선택은 우리의 지혜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안에 지혜가 점점 성장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 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의 인생이 정해진 청사진에 따라 움직여가고 있다는 관점보다는 훨씬 더 유연하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관점 모두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결정과정에서 멀리 떨어져 계신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청사진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외적인 상황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쉽고, 지혜를 통한 인도의 관점에서는 결정을 내리는 자신들의 선택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기 쉽다.
셋째, 하나님과의 우정의 관점이다(friendship perspective).
하나님은 우리가 동행하는 친구처럼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의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응답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때에 하나님의 생각을 구하면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분이다. 어떤 선택이든지 선택의 때에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기독교 사상사의 전반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전통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시고 우리가 들으려고만 한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선택할 수 있다. 하나님과의 우정을 통해 인도받는다는 관점이 주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우정이란 서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만난다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 존재로만 알고 필요 중심적으로만 만나려고 한다면 결코 영적 분별력은 얻어질 수 없다.
어떤 필요가 있을 때에만 찾는 하나님이 되어서는 결코 하나님과의 우정이 형성될 수 없다. 우정은 매일의 선택에서 꾸준히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신뢰가 쌓임으로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과의 우정이 전혀 없으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저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선택하다 보면 실패할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하나님과의 우정이라는 관점을 통해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분별력 있는 사람으로 변화될 때 상황과 지혜라는 두가지 관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재훈 목사
<온누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