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톡] 이념과 무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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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고 역사상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 한국교회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우리 교회가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단서다. 교회의 정치화가 일상이 되어버린 오늘 한국교회의 방향성을 읽어낼 수 있는 중요한 본질이기도 하다. 

성서는 이데올로기에 대하여는 말하지 않는다. 그 이데올로기가 교회와 신앙에 영향을 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벌어진 이념의 극한 대결과 갈등 그리고 그 이데올로기로부터 당한 피해와 고통의 트라우마가 교회의 존재에 깊이 뿌리내린 것이 오늘 한국교회가 우상숭배와 무속에 대하여는 관용으로, 이념에 대하여는 알레르기 경기를 하듯 편향적 입장을 견지하는 근거가 되었다.

한국교회가 정치적 선택의 순간마다 보수적 편향성을 지향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특히 교회가 기득권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자연히 교회의 수구와 기득권 옹호라는 자기방어의 입장을 갖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기득권이 아니라 신앙의 문제 앞에서 우리의 선택이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이다. 이데올로기와 무속 신앙 앞에서 우리의 선택 기준은 무엇인가? 무조건 좌파라는 딱지가 붙으면 반대하고, 그 어떤 우상숭배든 무속이든 하물며 이단까지도 용인할 수 있다는 정치적 논리 앞에 교회마저 문제를 제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인가?

오늘 우리 한국 사회는 보이지 않는 무속신앙의 힘이 작동하는 상상할 수 없는 원시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무속과 사이비가 용인되는 것을 적어도 교회는 대응하고 저항해야 함에도 우리는 침묵하고 기득권 권력의 카르텔에 동조하는 교회가 되고 말았다. 이념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이 신앙의 문제다. 그것도 원시적 하등 무속신앙이 21세기에 말이 되는 것인가 물어야 한다. 교회가 아무리 기득권 세력이 되고 정치적으로 보수화되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와 국가가 무속과 저급한 영적 무당들에 의해 종속되는 것을 묵인한다면 교회로서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잃어버린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 할 말이 없다.

우리 교회의 역사 속에서 이동휘나 손정도 목사와 같은 이들은 기독교 사회주의자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기독교인이지만 사회주의자임을 자인하며 살았다. 그러나 교회가 사이비 이단들과 무속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침묵하는 것은 이념의 문제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정법이니, 천공이니, 권진이니 하는 이들의 이름을 수시로 들으면서 또한 그들이 우리 사회와 공동체를 얼마나 심각한 길로 끌어가고 있는지를 알면서 교회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가? 교회가 지지해 만든 권력이어서 말을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비겁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새로운 결단을 해야 할 때다. 이러다 모두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되어서 하는 얘기다. 

유해근 목사

<(사)나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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