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저일 생각하니] 나의 애창곡 동요 ‘고향의 봄’과 ‘오빠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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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주 부르는 애창곡 동요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이원수(1911-1981)가 15세에 지어 1926년 어린이잡지 4월호에 당선된 동시 ‘고향의 봄’이다. 또 하나는 이원수 아내 최순애가 12세에 지어 역시 소파 방정환 선생이 주간하는 어린이 잡지에 당선된 ‘오빠생각’이다. 이 두 소년 소녀는 서로 발표된 동시에 반해 마산의 이원수 총각과 세 살 아래의 수원 최순애 처녀는 사랑편지가 오고간 끝에 부부가 되었다. 이원수의 ‘고향의 봄’은 홍난파 작곡으로 유명한 동요 노래가 되고 일제시대 관헌에 잡혀가 소식 없는 오빠생각에 착상해 12세 어린 나이에 지은 최순애의 ‘오빠생각’은 박태준 작곡으로 이름난 동요 애창곡이 된 것이다. 내가 북아현동 소재 중앙여고 근무할 때 여고생들 교양 문학특강으로 이원수를 모셨을 때 일제시대 마산에서 창원 집에 가는 길에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꽃 복숭아꽃 살구꽃을 보고 시상이 떠올라 15세 나이에 썼다는 창작동기를 말해 주었다. 

어린이 잡지에 소파 방정환 선생이 당선시켜 주어서 자신은 15세에 한국문단에 등단했다고 말했다. ‘고향의 봄’ 노래는 내 고향 경남 함양 두메산골 마천을 연상시킨다. 감나무 호두나무 뽕나무까지 집안에 있던 고향집을 생각나게 한다. 논밭갈이 잘 하는 황소, 마을 혼사나 초상 나면 목 찔리던 지리산 똥돼지,생일날에 잡혀 목이 비틀어지던 장닭, 컹컹 도둑 잘 지키던 똥개 등 한식구같던 가축 생각도 정답게 ‘고향의 봄’ 노래에 필름이 되어 돌아간다. 그 때문에 학생들과 소풍 갔을 때나 문우들과 문학기행 간 자리에서 나의 애창곡 ‘고향의 봄’을 우렁차게 불렀다. 앵콜이 나오면 최순애의 ‘오빠생각’을 부른다. 이 두 동요는 우리 말과 글이 설움받던 일제시대 순박한 우리 토박이말과 아름다운 정서로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동시로 창작했다. 우리 말과 글 우리얼을 지켜 쓴 나라 겨레사랑 작품이다.

광복 후 나라는 허리 잘리고 피비린내 나는 6.25 동란도 겪으며 남한에 천만 이산가족이 생겼다. 3.8선, 휴전선, 철조망이 가로막혀 남북이 서로 정든땅 고향을 오고 가지 못한지가 70년도 넘었다. 이산가족 상봉도 너무 어렵다. 북한 고향을 두고 한 맺힌 울음 쏟다 숨지는 실향동포가 자꾸 늘어가고 있다. 언제 자유민주 완전자주 통일만세 부를 날이 올까? 우리의 통일 염원이 독일처럼 하루빨리 오길 빌어본다. 남북 8천만 짚신겨레가 다같이 한목소리로 나의 애창곡 ‘고향의 봄’ ‘오빠생각’을 부를 그날이 오길 간절히 기도한다. 버스타면 갈 수 있는 고향, 민족 대이동을 이루며 한가위 설명절 때 고향산천 찾아가는 남쪽 고향을 둔 국민은 그 행복한 마음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나는 애창곡 ‘고향의 봄’을 마음 속으로도 늘 부른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그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꽃동네 새동네 나의 옛고향/파란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그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2절로 부르는 동요로 8천만 남북겨레의 고향노래가 되어 있다. 최순애가 지은 동요 ‘오빠생각’도 가을이 오면 더욱 절실한 노래이다.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뻐꾹 뻐꾹 뻐국새 숲에서 울제/우리 오빠 말타고 서울 가시며/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남매의 형제애가 물씬 풍기는 동요로 우리 가슴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이원수 최순애 부부가 지은 ‘고향의 봄’ ‘오빠생각’ 두 동요 노래를 나는 늘 애창곡으로 사랑하고 있다.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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