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을 제외한 희생제물의 모든 것을 거룩한 불로 태우는 번제(燔祭)는 제물을 태울 때 나는 연기(향기)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제사를 말한다. 성전 마당의 번제단(燔祭壇)에서 드려졌다하여 번제(燔祭)라 칭한다. 철저한 자기희생과 헌신을 상징하는 번제를 드릴 때에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규례를 쫓아 순종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 그러나 이방인들 가운데 행해진 사람을 제물로 삼는 인신번제(人身燔祭)는 가증한 행위로 철저히 금지되었다. 수송아지, 숫양, 숫염소 등 모두 흠이 없는 수컷을 번제물로 드렸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예외적으로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도 허용되었다. 번제(燔祭)에는 매일 조석(朝夕)으로 드리는 상번제(常燔祭)와 안식일이나 정결 예식 때, 그리고 각종 절기 때마다 드리는 특별번제(特別燔祭)가 있다.
조석(朝夕)으로 상번제(常燔祭)를 드릴 때에는 곡식의 가루를 불살라 드리는 소제(素祭)와 술이나 포도주를 제단에 부어드리는 전제(奠祭)를 함께 드렸다. 구약의 5대 제사 가운데 하나인 소제(素祭)는 피 흘림 없는 유일한 제사이다. 성결한 생애를 하나님에게 약속하는, 행위의 열매를 가루로 만들어 드리는 자기 부인의 의미가 함의 되어 있다. 소제(素祭)를 드리는 방식에는 고운 기름 가루 한 줌에 유향을 섞어 단 위에 불사르는 소제(素祭), 화덕으로 구워 무교병이나 무교전병으로 드리는 소제(素祭), 철판에 부쳐서 드리는 소제(素祭), 솥에 삶아서 드리는 소제(素祭), 첫 이삭을 볶아서 찧은 것으로 드리는 소제(素祭) 등 다섯 가지가 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한복음 4;24)
구약시대는 속죄(贖罪)를 위해 짐승을 희생 제물로 죽여 그 피로 죄 사함을 위한 제사를 드렸다. 지금도 원리는 동일하다. 교회는 그리스도라는 희생 제물의 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영(靈)과 진리(眞理)로 드리는 예배를 말한다. 십자가가 없는, 나의 죄(罪)를 대속(代贖)하기 위한 예수님의 피 흘림이 없는 예배는 구원받지 못한 가인의 예배이다. 구약시대 제사나 지금 우리가 드리는 교회의 예배, 기도 속에는 반드시 죄의 자백이 있어야 한다. 지은 죄가 없어서 자백할 죄도 없다는 사람에게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 죽음이 헛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 고의적인 범죄와 과실로 인한 범죄, 용서받을 수 없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자기만 아는 죄와 자기도 모르는 숨은 죄,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 행위의 죄, 입으로 짓는 죄, 은밀한 죄, 밝히 드러난 죄 등에서 벗어날 인간은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죄인(罪人)들이다.
구약시대에 조석으로 드리는 상번제가 이 땅에 들어와 새벽기도와 철야기도로 바뀌면서 기독교 부흥의 원동력이 되었으나, 코로나 펜데믹 영향으로 우리 주위에서 새벽기도와 철야기도가 사라지고 있다. 초심을 잃어버린 탓 아닐까? 가정의례준칙이 제정되기 전에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영위(靈位)를 모신 상방(喪房)에 고인의 사진과 간단한 유품(遺品) 유의(遺衣)를 놓고, 조석(朝夕)으로 상식(上食)을 올리면서 상주(喪主)들이 상복을 입고 곡(哭)을 했다. 초상(初喪), 소상(小喪), 대상(大喪) 등 3년 상을 치룬 후 탈상(脫喪)을 했다. 유교의 조상신(祖上神)을 섬기던 이러한 상례(喪禮)는 사라지고 없다. 조석(朝夕)으로 올리던 상식(上食)의 상례(喪禮)와 조석(朝夕)으로 드리던 상번제, 그리고 새벽기도와 철야기도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미어지는 새벽이다.
고영표 장로 (의정부영락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