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서에 나오는 법은 하나님으로부터 시내산에서 주어진 십계명과 이후 하나님과 계약을 맺는 맥락에서 등장하는 여러 계약 법전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법의 특징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사람들 사이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 결코 뗄 수 없는 관계로 연결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섬기며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를 기억하고, 이웃과 더불어 아름다운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장 오래된 법으로는 ‘계약서’(출 20:22~23:33)라고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의 유일성과 예배와 제단 관련 규범, 사회 규범, 윤리와 도덕에 관한 규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계약법전은 사회적 곤경에 처한 이들을 위한 신학적 반응에서 시작합니다. 가난한 자, 이방 나그네, 거지, 고아와 과부 그리고 노예의 기초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제정되었습니다.
이 법은 노예에 관한 법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피루’란 말은 땅을 소유할 수 없었던 이스라엘인 노예들을 지칭하는데, 종들 가운데서 가장 압제받는 종들을 뜻하는 말입니다. 하피루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며 지역 토착민보다 더 낮은 계층이 되어 극한의 상황 속에 살면서 수모를 당하였기에 이들의 회복을 위한 평등의 법을 만들어주셨습니다. 노예에 관한 규정을 계약서의 첫머리에 두신 이유는 이스라엘은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시작한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노예로 학대당하던 시절을 잊어버린 채 백성들끼리 착취자와 노예로 나뉘어 살아가는 것은 출애굽을 무효화 시키는 일이 되어 집니다. 그러하기에 이제는 주인과 종의 관계를 무너뜨리고 서로를 존중하며, 정착할 가나안 땅에서는 인간의 기본 생활권이 위협받지 않도록 만들어 주신 첫 번째 사회보장 제도입니다.
출애굽의 계약 법전은 철저하게 약자를 보호하고,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데 있습니다. 가난한 사회적 약자들은 날마다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생존권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강자나 권력자들의 불의를 결코 용납하지 않고, 약자를 학대하지 말며 종과 주인이 착취나 지배의 관계가 아닌 사랑의 원리를 적용하는 관계를 이루도록 하였습니다. 동일한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가난하여 억눌려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의 백성들을 보호하고 해방시키는 것이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품으셨던 의도였습니다. 이러한 기본권 보장은 이스라엘 민족 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방 나그네와 종에게까지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디아코니아 정신입니다. 약자에 대한 책임과 배려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모두가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한호 목사
<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디아코니아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