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다름없는 고래의 일상적 모습이겠지만, 그냥 호흡하고 움직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DNA 깊숙이 감춰진 원시적 본능을 자극한다.
느리지만 빠른, 이성을 넘어 잠재의식 속에 숨겨진 자아(自我)에 밀어닥치는 신비하고도 신성한 모습이다. 더하거나 뺄 부분이 전혀 없다. 고래 움직임 하나하나가 예술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자는 계속 말을 이어간다. 춘원 이광수에 대한 자신의 자세는 보스턴 앞바다에서 만난, 이들 고래를 대하는 심정과도 같다고 했다.
또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춘원의 일생 그 자체를 조망해 보면, 20세기 전반, 동아시아 한 가운데서 만난 그 고래의 행적, 그 자체다. 문학은 물론, 삶과 사고의 흔적이 고래의 모습에 비견된다고도 했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무한대의 세계가 춘원의 삶에 투영돼 있다고 했다.
춘원을 친일 문제에서부터 시작하려는 사람을 위한 부연 설명이지만, 이 글의 무게 중심은 춘원의 친일, 또는 친일 여부에 관한 논의가 아니라는 점을 전제하고 싶다.
그 같은 논의는 저널리즘 차원의 영역을 넘어선다. 적어도 한 세대 앞을 내다보는 학문세계에서 논의될 문제라고 판단된다.
한 세기가 흐르는 데도 아직 이 땅에는 춘원에 대해 시시비비가 많다. 아직도 숨어서 기념행사를 해야 한다고 한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 춘원의 문학을 위해서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지금도 지난 과거에 대한 집착이 조금도 풀릴 기미가 없다. 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순수한 문학을 아직도 정치적 또는 이념적 잣대로 언제까지 재단할려고 하는지 참 답답하다.
아직도 춘원을 용서 못해 주고 있다. 누구의 권리인지 모르겠다. 더 이상 신경과 관심을 쓰고 싶지 않지만, 해도 너무 심한 것 같다.
나의 관심은 왜 춘원에게서 고래의 전설을 느낄 수 있는지, 그리고 춘원이 남긴 ‘엄청난 행적과 주변환경은 어떠했는가’라는 점에 관심이 더 있다.
즉 춘원의 ‘문학적 업적’에 주목하자는 것이 나의 의도이며 목적이다. 이제 남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고래의 꿈이다. 그것은 춘원이 ‘반민특위’에서 온갖 수모를 당하고 출옥해서 살던 남양주 사릉(思陵)의 옛집을 ‘춘원의 문화원’으로 만드는 작업이 유일한 희망이고 꿈이다.
막내 딸, 이정화 교수의 꿈도 바로 이것이다. 막내 딸은 오늘도 이렇게 말한다.
“사릉 집은 아버지가 1944년 직접 지은 집입니다. 아버지가 쓰신 ‘단종애사(端宗哀史)’의 현장으로 단종의 비, 정순(定順)왕후의 묘지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단종에 대한 아버지의 각별한 사랑과 함께, 서쪽으로 해가 넘어갈 때의 삼각산 풍경이 너무 좋아서 이 땅을 구입해 지은 집이라 했습니다. 가능하면 1944년 당시 집 모양을 그대로 복원해 아버지 ‘춘원 문학원’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이 집에서 주옥같은 작품을 많이 써 냈습니다. 여기에는 아버지 춘원의 작가 정신과 혼이 그대로 배여 있는 집입니다. 그러므로 작가가 되려는 후세인들이 이곳에 들러, 그의 영감을 받고 제2, 제3의 춘원이 되는 아름다운 문학적 흐름의 역사가 이곳에 있었으면 합니다.
아버지는 진정 조국을 사랑했습니다. 삼한사온이 있고 사계절이 있는 이 나라 가을, 맑은 하늘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채수정
(본명 채학철 장로)
–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