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나’이다. 종교학적으로 생각하면, ‘나’라는 존재가 없이는 이웃도, 사물도, 신도 인식이 불가능하므로 의미가 없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하였다. 이것은 그 후 철학의 기본적인 질문이 되었고, 그 답을 얻기 위해 지금까지 많은 주의와 사상들이 생겨났다.
성경 창세기에는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하나님의 질문이 나온다. 이는 “사람아, 네가 어디 있느냐?”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는 말씀이다. 여기서 “어디 있느냐?”는 ‘네가 누구냐’라는 질문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며, 인간은 이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하며 사는 존재이다.
신앙생활이 무엇일까? ‘내가 누구인가?’를 항상 질문하며 사는 삶이다. 동물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묻지 않는다. 그러므로 동물은 백 년 전이나 천 년 전이나 진보와 발전이 없다. ‘내가 누구인가?’는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질문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내가 누구인가?’를 묻지 않고 사는 사람은 신앙 이전에 인간도 아니라는 말이다. 인간도 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신앙인 노릇을 할 수 있을까? 평생을 교회 다녔어도, ‘내가 누구인가?’를 묻지 않았다면, 마당만 밟고 다닌 사람처럼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불교에서는 ‘나’를 아(我)라고 한다. 그리고 이 아(我)는 욕심 덩어리 상태이다. 소유욕, 생존욕, 소속욕, 명예욕, 식욕, 성욕, 성취욕, 종족보존욕 등으로 가득차 있는 상태이다. 이런 상태를 벗어난 ‘나’를 무아(無我)라고 한다. 무아지경이란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주관도 없고, 객관도 없고, 세상도 없고, 욕망도 없는 상태이다. 이것을 힌두교에서는 범아일여(梵我一如)라고 한다.
눈으로 보이는 허상의 ‘나’는 가아(假我)이고, 무아의 경지에서 만나는 본질적인 ‘나’는 진아(眞我)이다. 진아를 찾기 위해서 우리는 ‘내가 누구인가’를 항상 질문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해야 한다. 진정한 나는 하나님과 합일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이란 가아(假我)를 죽이고 진아(眞我)를 찾는 생활이다. 세상 욕심에 찌든 가아(假我)를 가지고 목사 노릇을 하거나 장로가 되면 안 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갈5:24) 사람들이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삶이어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상태이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