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미학] 그 맑고 환한 밤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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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봐도 술 취한 사람의 버릇을 고치는 방법으로서는 추위에 된통 혼이 나도록 내버려 둬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순호는 걸어가면서 몇 번이나 되뇌고 다짐하듯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술을 마셔도 정도가 있어야지 코가 터져 피투성이가 되도록 취했으니 저런 사람은 오히려 교육상 내버려 두는 게 좋은 거야.’

교회 장로이긴 하지만 이러한 경우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얼 알아보려고 물어보아도 제대로 대답을 못하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한다는 소리가 시비조로 따지듯 대드는 데에는 정나미가 뚝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일어나시라니까요. 이러시다가는 몹시 추운데 큰일나십니다.”  “뭐야 당신! 뭐가 큰일이야?”  “몸이 언다고요.”  “당신이 뭔데 나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거요?”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라 모처럼 새 옷으로 갈아입고 예배에 참석했던 순호로서는 도와주어야겠다고 결심한 그 마음 자체만으로도 큰 용단이 아닐 수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고마움은커녕 싸움하자고 덤벼드니 기가 막히지 않을 수가 없다. 순호는 손에 묻은 피를 닦으며 전주에서 떨어져 나왔다.

‘나는 교회 장로로서 내 할 일은 다 했으니까! 일어나라고 해도 일어나지 않고, 일러주어도 듣지를 않고, 덤비기만 하니 낸들 어쩔 수가 없는 게 아닌가.’

이만치 걷다가 전주를 바라다 보니 희미한 전등 아래에 움츠리고 앉아있는 남자가 보였다.

 ‘어? 저게 소매치기 아닌가?’ 순호는 쏜살같이 달렸다. 그러자 전주아래에서 검은 남자가 튀었다. 순호는 뒤쫓다 말고 되돌아 내려오는데 성가대 김은숙을 만난 것이다.

 “아직 안가셨어요?” “아니 뭐 별일은 아니고 술이 취해 정신없이 전주 밑에 앉아있는 사람이 있어서…” “어딘데요 장로님?”  “왜 그래 미스 김?” “사실은요 부끄러운 말씀이지만 저의 아버지께서 술이 만취가 되셨는데 저를 데리러 간다고 집에서 교회쪽으로 나가셨다는 거예요. 이렇게 추운데,”

순호는 뛰다시피해 전주 쪽으로 갔다. 뒤따라 온 은숙이가 화들짝하고 놀라더니 중년남자의 숙인 얼굴을 두 손으로 치켜 올렸다.

“아니? 이 피가? 웬일이세요 아버지! 옷은 또 왜 이렇게 풀어 헤치셨어요 추운데!”

“이봐 미스 김. 진정하라구. 크게 다치신게 아니라 코를 부딪치셨나봐. 여보세요! 따님이 왔어요. 여보세요! 정신을 차리시라구요. 따님이 왔다니까요.”  “응? 내 딸이? 은숙이가 왔어?”

 그제서야 말귀를 알아 들었는지 눈을 크게 뜨며 몸을 일으켰다.

 “미스 김 아버지 소지품이 다 있나 보라구. 아까 사실은 어떤 못된 놈이 아버지 옷을 헤치고 털려고 하길래 뒤쫓아 올라갔었던 게야.”

 은숙이는 재빨리 안주머니와 손목시계를 살폈다.

 “다 있어요 장로님. 장로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아버지를 도와주셔서.”

 “뭘 고맙긴…”

 하마터면 하나님께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교회 성가대원 아버지께 큰 잘못을 저지를 뻔했다는 생각이 들자 순호는 큰 한숨이 터져 나왔다. ‘내가 참지 못하고 뺨이라도 한 대 갈겼더라면.’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아직도 크리스마스 캐롤이 들려오고 있었다.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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