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는 촉석루가 이름난 교육도시다. 남강이 새파랗게 흐르는 지금의 진주공원 앞에 수주 변영로(1898-1961)가 1923년 신생활(新生活) 잡지에 발표했던 ‘논개’ 시가 논개를 보듯 시비로 반갑게 서 있다. 장수 출신의 주논개는 최경회가 장수현감을 할 때 장수인들 연구로는 후처로 사랑받았다고 한다. 최경회가 1593년 6월 진주성 경상우병사로 참전하여 최후 발악으로 가또오, 고니시, 구로다 등의 왜장들이 지휘 5만 명이 돌진해 오는 왜병들과 격렬하게 1만 정도의 병력으로 싸우던 김천일 최경회 등 지휘하던 우리 장수들과 군병들이 거의 전사하고 진주성은 상경시에 잘 지켰으나 왜병들 후퇴시 2차공격에 진주성이 함락되고 말았다. 촉석루에서 왜장들이 조선 기생들 끼고 앉아 전승잔치로 술판을 벌일 때 남편 최경회도 전사로 잃은 논개는 나도 기생이라 말하라하고 기생신분으로 참여하여 한 왜장 옆에 기생 노릇을 했다. 논개가 유혹한 왜장은 케야무라(毛谷村六助)였다. 의암 바위까지 유혹에 성공한 논개는 가락지 낀 열손가락으로 왜장의 목을 껴안고 순국했다. 수주 변영로는 시의 첫연에 /거룩한 분노는/종교보다도 깊고/불붙는 정열은/사랑보다도 강하다/로 읊었다. 논개의 나라사랑 마음은 사랑보다도 강하다고 논개의 순국애국심을 변영로는 높이 평가했다. 이 논개의 순국정신이 지금도 한결같이 서 있는 의암바위 앞으로 흐르는 남강물 위로 논개의 넋이 새파랗게 살아 있다. 논개는 나라사랑에 목숨을 바쳤는데 진주에서 대학입시생으로 상경하여 서울역 앞에 있는 한 여관에 숙소를 정한 진주 청년 하나가 입시는 내팽개치고 미지의 한 처녀에게 홀딱 반하여 그만 식음을 전폐하고 여관방에 열이 펄펄 끓게 앓는 상사병 환자가 되었다. 여관방 여주인이 조석을 차려와도 전연 먹지 않고 며칠 째 앓는 청년의 가슴을 짐작으로 진찰해 보니 상사병 환자였다.
이 진주 청년은 어느 날 저녁 무렵 무심코 문을 열고 아래로 큰 가래침을 내뱉었다. 이 가래침은 때마침 지나가던 길손 한 처녀의 까만 머리위에 떨어졌다. 미안하여 재빨리 2층 여관방을 뛰쳐나온 진주 청년은 주머니에서 자기 손수건을 꺼내어 처녀 머리 위 가래침을 깨끗이 닦아주며 미안하다고 정중히 사과하면서 그 처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천사미인이었다. 청년의 행동을 이해한 처녀는 유유히 사라져 갔다. 그 처녀가 누군지는 모르나 진주 청년 가슴에 그만 식음을 전폐하는 사랑병환자를 만든 것이다. 여관집 여주인은 청년의 상사병 소릴 듣고 같은 동네 검사와 약혼되어 있는 처녀임을 알고 그 처녀를 찾아가서 한번 보고 싶어 다 죽어가는 청년을 살려달라고 간청하여 찾아온 처녀와 상사병 환자 청년은 극적으로 만났다. 청년은 자기와 결혼해 주지 않으면 자기는 죽게 될 것이라고 강력히 매달렸다. 이미 입시 날짜는 다 지나갔다. 이 청년과 자기 약혼녀가 만난 것을 알게 된 검사는 약혼녀와 갈등을 빚다가 결국 파혼을 선언했다. 그 천사미인은 진주 청년과 장래를 같이 하기로 굳게 약속했다. 진주 청년은 내년에 상경하여 꼭 서울법대 합격하여 명검사가 되겠다고 천사미인에게 반석같은 미래의 신뢰감을 심어 주었다. 사랑이 이루지는데는 인연이 있다. 천사미인의 약혼 검사와는 어떤 인연으로 약혼까지 이루어졌는지 알수 없으나 파혼의 비극을 맞았다. 약혼 검사는 불쾌감과 함께 사랑이 강한 증오심으로 변했는지도 모른다. 진주 청년은 어쨌거나 본의 아니게 무심코 여관 창밖으로 내뱉은 가래침이 인연이 되어 노래에 나오는 진주라 천리 길에서 올라온 서울역 앞길에서 지극히 우연히 만난 미지의 천사미인이 상사병을 앓게 하더니 약혼 결혼까지 승리의 길까지 열어줄 줄이야 진주 그 청년이 꿈엔들 생각했겠는가? 그야말로 하나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가래침 인연의 행복이 밝게 꽃피리라 믿는다. 우리의 고전소설 이몽룡 성춘향 부부 인연은 성춘향의 그네타기였다. 5월 단오날 그네에 펄럭이는 나비같은 성춘향 미모에 넋이 나간 이몽룡은 자다가 헛소릴 할 만큼 성춘향을 사랑한 것이다. 색마 남원부사 변학도가 주는 고난도 있었으나 이몽룡 부부는 3남 2녀의 가정도 이루고 잘 살았다. 모대학교수 부인이 유학차 도미하여 자식이 있는 유부년데도 미국 남자와 눈이 맞아 가정을 버렸다. 서울 남편이 한을 삭히는 술로 세월 보내는 이야기도 들었다. 진주 청년 상사병 승리 이야기는 70년대 대중 잡지에서 읽었던 내용이다. 사랑도 지성이면 감천으로 성공하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남녀간 사랑은 신의가 절대적이다.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