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하나님의 새 역사 기대하며 새해를 시작하자 

Google+ LinkedIn Katalk +

빛안 이원영이라는 화가가 있다. 필자도 그의 전시회에 몇 번이나 가서 그의 그림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가졌었다. 그는 ‘꽃’을 그리는 화가이다. 그(녀)의 모든 그림, 전시를 위한 대형 그림에서부터 작은 엽서의 그림까지 그의 화폭에는 언제나 활짝 피어난 꽃으로 가득하다. 그의 화폭에는 봄이고 여름이고 가을이고 겨울이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구름이 끼나 바람이 부나 언제나 화사한 꽃이 피어난다. 그래서 그 그림을 보면 즐겁고 행복하다. 나는 그의 그림을 보면서 우리 인생, 아니 우리 사회의 비전을 본다. 어떤 경우에나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 어떤 경우에서나 화창하게 피어나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행복한 인생일까, 어떤 경우에나 꽃으로 피어나는 삶의 현장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실 세상이라는 꿈을 꾼다. 

 새해가 밝았다. 새해를 시작하자마자 여기저기에서 들려 오는 소식들은 구름이 잔뜩 끼어 어두컴컴한 세상이다. 어느 부분 밝고 화창한 새날에 대한 전망을 찾기가 힘들다. 새해에도 끝나지 않은 세계 도처의 전쟁 소식이나 침체하여 가는 경제, 점점 더 흉포해지는 인심들, 특히 국내 정치 상황들과 세상인심들, 새해는 밝아왔지만 시대 상황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는 그대로 남아 있다. 무엇보다 답답한 것은 2024년을 시작한 우리 한국교회에 대한 전망이다. 교회 여론을 주도하는 기독교 언론들의 새해 전망도 그렇고 한국교회를 이끌어 가는 학자들이나 지도자들의 생각도 그런 것 같다. 언론은 줄줄이 안개 낀 새해를 전망하는 데이터를 보도하고 그렇게 전망한다. 각종 데이터에 나타난 교회에 대한 부정적 신뢰도가 그렇고 우리 사회에 팽배한 반 기독교 정서도 그렇고 다시 일어서기 힘들 정도의 교인들의 예배 출석률을 보여주는 예배당의 텅 빈 좌석들도 그렇고, 이를 만회할 뾰족한 수단도 찾지 못하니 그냥 그렇게 주저앉아 버릴 것 같은 분위기가 그렇다. 마치 봄이 다가와도 꽃이 피지 않을 것 같은 불안으로 또 한 해를 시작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새해는 역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한 축복의 공간이다. 역사를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새역사를 기대하자. 새해에 우리를 위하여 준비해 주신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하자. 문제는 우리 자신이다. 사회 환경이나 여론보다는 하나님께 집중하자. 너무 세상 여론이나 교회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 신경 쓰지 말고 우리 할 일이나 바로 하자. 사실 교회를 향한 세상의 시각은 언제나 싸늘했다.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세상이 교회에 높은 점수를 준 역사는 없었다. 문제는 우리 자신의 바로 됨의 문제이다. 우리가 바로 되면,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면 세상 여론이나 평가와 무관하게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역사하실 것이다. 그래서 축복으로 허락하신 새해를 염려의 구름으로 흐리게 하지 말고 당당하게 우리가 해야 할 사명과 책임을 다하자. 우리는 옆을 바라보기보다는 위를 바라보며, 새해는 운명적으로 다가온 고해(苦海)로서가 아니라 다시 주시는 은총의 현장으로 시작하자는 것이다. 지나간 실패에 연연하기보다는 다가올 새역사에 대한 기대로 새해를 시작하자. 사회적 신뢰도를 높이고 실추된 권위를 회복할 무슨 묘수나, 기발한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교회의 바로 됨으로 새 역사를 시작하자. 개혁은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다. 사실 방법은 간단하다. 우리가 바로 되는 것, 바른 신앙을 회복하는 것, 하나님의 역사 운행에 순종하는 것, 새해, 새 역사를 이끌어 가실 하나님의 역사 운행에 순종하는 것이다. 세상 여론에 너무 경기를 일으키지 말고 새해는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공간임을 믿고 우리 모두 바른 신앙을 회복함으로 새해를 시작하자. 새해는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시간이다. 

이만규 목사

<신양교회>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