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톨스토이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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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오른 직후인 1879년, 나이 51세 되던 해에 커다란 정신적인 위기를 겪었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두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두어 부와 명성을 얻었으나, 곧 그는 인생이 공허와 무의미함으로 가득함을 깨닫고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이때부터 그는 기독교, 불교, 인도철학을 비롯한 다양한 종교와 과학, 철학 서적을 섭렵하면서 영적인 여행을 시작하였는데, 마침내 신약성경의 복음서를 읽고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에서 인생의 근본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해답을 찾게 되었다. 그의 명저인 『참회록』과 『인생론』은 그 영적 여정의 기록이다. 그리고 1910년 사망할 때까지, 『바보 이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같은 신앙적 통찰과 지혜가 가득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특히 『복음서의 핵심』(The Gospel in Brief)은 4 복음서 중에서 복음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구절만을 발췌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인데, 그의 신앙관을 잘 보여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그는 복음서 중에서 예수님의 탄생과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다룬 내용과 다양한 이적 기사는 모두 신앙의 본질과는 무관한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톨스토이는 인간은 동물적인 욕구를 추구하는 이기적인 삶을 통해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고, 무의미한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이웃과 세계를 향한 사랑의 행동만이 인간을 참된 행복으로 이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웃과 세상의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고통과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참된 생명이 주어진다는 것이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과 복음의 핵심이라고 톨스토이는 말한다. 

그러나 그는 또한 이 복음의 진리가 기독교 여러 종파의 교리와 종교적 전통에 의해서 왜곡되고 오염되어 버렸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제도화된 기독교가 신앙의 이름으로 자신과 다른 종파를 정죄하고 심지어는 살인을 용인하는 데까지 이르렀는데 이것은 명백히 신앙의 본질에 어긋나는 악이라고 톨스토이는 주장한다. 톨스토이의 이러한 비폭력 평화주의는 20세기 초 전쟁과 제국주의 침략의 시대에 간디와 마틴 루터 킹과 같은 수많은 인도주의자에게 영감을 주고 무저항 비폭력 평화운동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예수님의 탄생과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하나님의 사랑이 실현된 구원의 역사임을 믿는 우리 신앙인은 톨스토이의 치우친 신앙관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기독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가 교리의 차이로 서로 반목하고 상대방을 정죄하면서, 세상의 전쟁과 증오와 불의를 무기력하게 바라보고만 있는 오늘날의 현실은 톨스토이가 주장하는 순수한 복음의 본질을 다시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한다. 

2024년 새해 나라 안팎의 사정은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 세계는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 그리고 미·중 간의 신냉전으로 평화가 위협받고 있고, 국내에서는 경기침체, 인구감소 등 수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부도덕한 정치인들은 자신의 기득권 지키기에만 몰두하고 있는 현실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지난 2천여 년 동안 전쟁과 기근과 역경 속에서도 지금의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경제적 번영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기독교 복음의 밝은 빛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복음의 빛이 지금도 우리의 앞날을 비추고 있다는 확신이 우리를 희망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김완진 장로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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