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09회 총회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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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시즌이다. 교단마다 비슷한 시기에 총회를 개최하다 보니 가히 총회의 계절이라 불릴 만하다. 교단 언론사들은 해당 해에 펼쳐지는 각 교단 총회의 주요 내용을 다루는 데 바쁜 시기이기도 하다. 매체들마다 다르겠지만, 독자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관전 포인트’, ‘주요 쟁점’, ‘미리보는 총회’ 등의 용어를 사용해 독자의 흥미를 북돋기도 한다. 교단 총회에 대한 관심은 기독 언론에 제한되지 않는다. 사회 언론도 교단 총회의 이슈에 따라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을 넘어서서 취재에 적극적인 경우도 많다. 

교계 언론과 일반 사회 언론이 교단 총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다. 교계 언론의 경우 총회가 소속 교회나 한국교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부분 초점을 맞추지만, 일반 사회 언론은 하나의 사건기사 정도로 바라보는 경향이 적잖게 있다. 이러한 언론의 속성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말이 있다. “개가 사람을 무는 것은 뉴스가 되지 않지만, 사람이 개를 물게 되면 뉴스가 된다”는 말은 언론이 바라보는 시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일반적이지 않은 것이야말로 흥미를 끄는 뉴스가 돤다는 의미일 것이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일반 사회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안타깝게도 ‘Good news’가 아니라 ‘Bad news’가 태반이다. 이는 사회적 시각에서 볼 때 교회가 보편적인 교회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교회 외부의 사람들이 기대하는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본 교단 역시 최근 몇 년간 사회언론의 관심이 집중됐었다. 이슈마다 억울한 부분이 왜 없겠는가만은, 내놓는 해명마다 오히려 궁색한 변명으로 이해되거나 해석돼 조롱거리가 되었던 것이 대부분이다. 이를 ‘사단의 역사’ 또는 ‘교회를 향한 불순한 세력의 공격’으로 치부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했던 것도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도의 문이 막혔다’, ‘교인 수가 감소돼 위기다’는 현장의 목소리는 우리가 마주한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제는 위기론을 넘어 생존까지 걱정해야 할 때이다. 종교개혁에 버금가는 개혁이 우리 교단에 요구된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총회에서 논의되고 결정되거나 성과를 낸다 할지라도, 또한 좋은 제도와 규칙을 정비한다고 해도 그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총회의 결의를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다는 생각, 상위법인 총회 헌법을 “지켜도 그만 지키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종교개혁은 상식을 지키는 데 있는 것이다. 신앙인의 양심에 따른 상식과 일반인이 기독교인을 향해 요구하는 상식의 무게는 결코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지켜낼 수 없는 엄정한 규율이나 도덕적 잣대로 옭아매는 율법적인 상식은 아니다. 비록 지키기 힘든 것이라 할지라도 몸부림치며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으로 살아가려는 그 모습 하나면 되지 않겠는가. 자신의 잘못과 실수에 대해 관대하기보다 인정하고 회개할 용기가 절실한 때이다.

다행히도 109회기 총회는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를 주제로 열린다. 교회나 구성원의 능력으로 성장하는 교회가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에 의지해 성령님으로 부흥하는 교회를 위해 그 출발을 알리는 자리다. 성령님의 능력과 부흥을 경험하기 위한 전제는 ‘회개’다. 교회 지도자부터 회개하자. 회개는 성도들만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끄럽고 낯뜨겁다 할지라도, 자존심과 명예가 땅에 떨어진다고 해도 회개의 자리로 나서자. 회개의 역사가 109회기 총회에서 시작해 69개 노회 230만 성도들에게 옮겨붙는다면 자랑스러운 성총회는 자연스럽게 이 민족과 세계 열방을 행복하게 하는 주의 귀한 도구가 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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