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어느 선교사의 깊이 묻어 두었던 황장엽 비서에 대한 귀한 간증

Google+ LinkedIn Katalk +

“저들은 양식이 없어 기갈나는 것이 아니라 소망이 없어 죽어갑니다!”

전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 씨(1923~2010, 1997년 2월 대한민국으로 귀순)에게 복음을 전한 이야기로, 공산주의 이론과 김일성 주체사상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여 북한 김씨 왕조의 우상화에 결정적 기여를 한 황장엽 비서가 ‘복음의 생명력’ 앞에서는 단번에 녹아져서, 아멘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한다. 1시간 40분의 면담 시간 동안, 그는 진지하게 메모도 하고 질문도 하면서 복음을 다 들은 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아멘으로 고백하며 예수님을 영접하는 놀라운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문갈렙 선교사

문갈렙 선교사의 이야기

저(문갈렙 선교사)는 한국개척선교회(GMP)의 전문인 선교사로서 이집트, 인디아, 중국, 스리랑카, 러시아 등을 순회하며 기도와 전도로 세계를 변화시키는 3인조 운동 PET 사역을 하던 중 2006년에 인도네시아에 정착하여 그 땅의 심령들을 섬기라는 사명을 받고 그 나라에 들어가 사역하다 돌아왔습니다. 세상 말로 표현하여 로또에 당첨된 것보다 더한 정말 복 받은 인생으로 바뀌었다고 저는 고백할 수 있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저의 대학 생활이나, 대학을 졸업하고 입대, 예편하고 직장에 들어가는 모든 과정에서 주님께서 직접 챙기시는 손길을 경험하였습니다.

ROTC 장교로 근무할 때나, 직장을 정할 때나 모든 여정이 선교에 헌신하겠다고 약속드린 것에 맞추어진 훈련의 과정으로 인도하셨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군에서 나와 직장생활도 회사 주인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회사로 저를 인도하셔서 회사 주인을 보좌하여 따라다니며 그분을 위하여 특심으로 기도할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2023년 8월에 별세하셨는데 돌아가시기 전까지 기도하게 하시고 이제는 그분의 자녀들을 품고 기도하게 하시는 인도하심에는 분명히 지극하신 주님의 사랑이 녹아져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퇴직 후 다음 날부터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선교사로서의 갖춰야 할 능력과 자질을 갖추어 주시기 위해서 종횡무진 훈련의 현장으로 몰아내셨는데, 제일 우선시하시며 강조하셨던 현장이 복음 전도의 현장이었습니다. “국내에서 전도가 생활화되지 않는다면 선교지에 나가서는 더더욱 전도하기가 어려운 여건이니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각성시키시는 음성도 주셨습니다. 그래서 매일 날마다 사람들이 모이는 데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인 앞에서 전도하는 대중 전도가 아니라 일대일 전도를 하게 하시며 병원이나 공원, 전철역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매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전하게 하셨습니다.

황장엽 씨에게 복음을 전하다

이번 기회에 저는 1997년도 2월 12일에 우리나라로 망명한 황장엽 선생을 만나 복음을 나눈 체험을 간증으로 나누고자 합니다. 어떤 유명인사를 전도하였다는 자랑이나 공적을 거양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닙니다. 누구나 주님 앞에서는 소중한 영혼이요 사랑받을 대상이기에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중에 만난 대상 중 북한 선교와 관련하여 주님의 특별한 지침이라 확신하는 중요한 언급을 들은 사례이라 이를 상기하며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나누고자 하는 것은 저의 영혼구원의 열정이나 성과가 아니라, 모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망극한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전 북한 노동당 비서에 관한 뉴스를 접한 직후부터 수첩에 그의 이름을 적어놓고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장래를 주님께서 인도해 주시고, 그를 민족의 통일과 북한 복음화를 위하여 귀한 일꾼으로 사용하여 주소서! 무엇보다도 우선하시어 그에게 복음을 전할 열린 문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대한민국 서울공항에 도착한 황장엽 전 북한 로동당 비서 1997. 4. 20

당시 저는 교회 내에서 전도왕으로 소문난 한 분 집사님과 매일 교회 기도실에서 만나 오늘도 예비된 영혼에게로 인도하실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한 후, 거리로 나가 전도하는 일과를 성실히 감당할 때였습니다. 신문 기사에 나온 사람, 친척, 회사 동료, 상사, 동네 사람, 심지어 각국 국가 원수들, 특히 기독교를 핍박하는 나라의 국가 지도자들과 세계적 부호들도 전도 대상자 노트에 올려놓고 이름을 외치며 주님께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고 있는 우리를 주님께서 기뻐하신다는 증거를 전도의 현장에서 무수히 보여주셨습니다. 전도할 사람을 적어놓고 그들이 구원받도록 매일 기도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것은 즐겁고 설레는 삶의 촉매였습니다.

황장엽 비서를 위하여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매일 기도한 지 1년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두드리라!”는 마음의 음성을 주셨습니다. 두드리라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며 누구와 연관된 명령인지를 단번에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두드리는 행동을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가 의논하다가 편지를 써서 발송하는 것으로 두드리라는 주님의 명령을 실시하자고 결정하였습니다.

국가안전기획부(지금의 국가정보원) 부장에게 볼펜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저희는 사랑의 교회 누구누구 집사입니다. 우리 두 사람은 지난 1년간 황장엽 씨를 위해서 기도했는데 만약 우리에게 딱 1시간 30분의 면담기회를 주신다면 이분에게 그리스도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여 완전히 대한민국 사람이 되는데 결정적 도움을 드리도록 하겠다는 내용으로 솔직하게 면담 목적을 썼습니다. 왜냐하면 신문기사에는 아직 이 분이 완전히 자유대한의 품에 안기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면담을 허락하신다면 아래 전화번호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맨 밑에 성명과 전화번호를 달아놓았습니다. 이렇게 편지를 써서 떨리는 마음으로 평생 처음으로 서슬 퍼런 안기부장 사무실을 노크한 저희들에게 마치 홍해가 갈라지는 것과 같은 비중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면담을 허락한다는 회신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때가 1998년 6월 초였는데 어느 날 연락이 왔습니다.

“모레 시간이 됩니까? 여기 국정원입니다.”

우리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벅차서 잠시 목이 메어 말이 안 나올 정도였습니다.

“되고 말고요! 날마다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시다면, 양재동 OO빌딩 앞 버스 정류장에서 오전 9시에 기다려 주세요.”

편지 발송 후 103일이 지난 뒤인 1998년 6월 3일 마침내 황 비서를 만나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전도왕 이성준 집사님(2023년 소천), 사랑의교회 수석 부목사 김만형 목사님(현 친구들교회 담임),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이 안기부로 들어갔습니다.

안기부에서 일어난 영접 고백

약속 시간에 그 자리에서 기다렸는데 정말 영화처럼 까만 밴이 와서 우리를 태워 안기부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당시 여러 가지를 준비했었습니다. 녹음기도 하나 가방에 넣어 갔는데, 들어가서 모든 전도 과정의 대화 내용을 녹음하리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녹음이 허용 안 되어 녹음기는 당국자에게 맡겨두고 황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네 번의 관문을 지나서 안가라고 생각되는 한 4~5층 되는 아파트형 건물의 몇 층인지 모르지만, 안내를 받아 황 비서가 기거하는 호실에 들어갔는데, 양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노신사가 “어서 오시라요, 선생님들” 하면서 맞아 주었습니다.

뉴스를 통해 사진으로만 대하던 황 비서는 무언가 우리를 압도하는 기품을 풍기는 고매함이 넘쳐 흘렀습니다. 북한의 주체사상을 체계화시킨 장본인과 응접실에서 마주 앉게 된 것입니다. 1시간 40분의 면담 시간 동안 그는 진지하게 메모도 하고 질문도 하면서 복음을 다 들은 후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입으로 고백하며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생물학적 영생 관을 피력하던 그분이 마침내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이 분을 만난 시간은 1시간 40분이었는데 그 당시 저는 제가 배운 전도의 방법대로 첫 질문을 던졌습니다.

“존귀하신 선생님께서 혹시 오늘 저녁이라도 이 세상을 떠나시게 된다면, 저 영원한 천국에서 눈뜰 확신이 있으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영생을 가지고 있어요!”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없다로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가지고 있다고 답하는 바람에 상당히 놀랐습니다.

예상 밖의 대답에 다소 당황하면서 “그럼, 선생님이 갖고 계시는 영생에 대해서 저희가 듣고 싶은데 송구하지만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라고 요청했습니다.

“내 아들이 손자를 낳고 손자가 증손자를 낳고, 낳고 또 낳아 내 씨가 계속 끊이지 않고 이어져가는 것이 영생이 아닙니까?”

그 대답을 들은 후 잔잔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분께 말했습니다.

“선생님, 하나님께서 불가능한 길을 열어 주시면서까지 오늘 지체 높으신 황 선생님을 만나게 허락하신 특별한 계획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제가 얻어 갖고 있는 영생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하는데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말씀해 보시라요.”

그때서부터 황 비서는 메모하며 잠잠히 경청하시고는 숙연해지더니, 저의 영접 기도 초청에 흔쾌히 동의하셨습니다. 정중히 양탄자 깔린 바닥에 무릎 꿇으며 “어떻게 하면 내가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습니까?” 하고는 진지하게 영접 기도를 따라 하며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녹음기 소지가 허락되지 않아 당시 황 비서를 만났을 때의 대화 내용을 안기부에서 나오자마자 문 앞에서 기도 노트에다 써서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뇌리에서 사라지기 전에 빨리 기록한다고 글씨체가 아주 악필이었지만 당시의 대화 내용을 기록하여 두었기에 소중한 그분의 언급을 이렇게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황장엽 비서와의 대화를 기록한 문갈렙 선교사의 노트.

오늘날 우리는 교회마다 북한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데, 피 흘림이 없는 복음적 평화통일을 이루어 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 다시 황 비서를 만났을 때를 회상하며 그 당시의 기록을 읽어 보노라니 북한선교의 방향과 목적을 일러주시며 촉구하시는 주님의 음성같이 들립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이 간증을 나누어 한국교회가 모두 비전을 품고 낙심하지 않고 기도하며 선교 실천을 이어가면서 주님의 때를 대망하라는 말씀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010년도 10월 소천하신 황장엽 비서 기일이 가까워오는 이 시점에 다시 한번 그때의 기록을 꺼내 보면서 회상합니다. 저희 전도팀을 만났을 때,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확신에 찬 음성으로 일러주시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공산주의 이론과 김일성 주체사상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여 북한 김씨 왕조의 우상화에 결정적 기여를 한 분이 복음의 생명력에는 단번에 녹아져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내가 들은 이 복음을 북한 동포들이 듣도록 힘써달라!”


황장엽과 수행원 김덕흥 망명 기자회견 1997. 7. 10

황장엽 씨의 고백

(면담 당시 황장엽 비서가 복음의 능력을 듣고 이해한 후 결신하고서 아래와 같이 놀라운 말로 고백했습니다.)

“이제야 말하지만 사실 1년 전 타계한 나의 친누님이 지하교회 성도였습니다. 나의 선친은 유교, 모친은 불교를 믿으셨습니다. 나의 누님이 우리 집에 왔을 때마다 늘 말하기를 수령님도 언젠가는 죽고 세상은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지만 영원히 불변하시고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나는 늘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꾸중하고 타박만 하고는 누님을 자기 집으로 가라 내쫓았습니다. 누님께 예수 믿는다고 뭐 별다른 게 있느냐고 물었더니 예수 밖에 다른 믿을 대상이 없다고 하더군요.

복음을 듣고 보니까 북한 수천만을 살릴 수 있는 길은 기독교밖에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소련이 붕괴한 것은 기독교와의 영적 싸움에서 패했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 레닌주의는 압제와 폭력으로 인민을 이끌었으나, 결국 기독교의 사랑이신 절대자에게 진 것입니다.

북한은 소련보다 더한 이 세상에서 유례없는 폭력 집단으로 인민을 압제하고 있지만 결국은 구소련처럼 무너질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지금 육체적 양식이 부족해 수백만이 굶어 죽어가고 있고, 내가 넘어오기 전에 150만이 굶어 죽은 것을 보고 왔는데 1년이 지났으니 50만 명은 더 죽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굶주림의 현실에서 문제는 육체적인 양식보다는 정신적인 양식이 전무하다는 것입니다. 인민은 일어나려야 일어날 정신적 힘이 없는 현실입니다.

이들의 정신적 기아 상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길은 기독교밖에 없다고 봅니다.

어떻게 하든지 계속 그들과 접촉해 정신적으로 기독교를 깨닫고 수용해 힘을 얻도록 힘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북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기독교인들은 모두 의용이요 허수아비입니다.

조선 기독교연맹 위원장 강영섭도 아버지가 강량욱 목사였으나 그 아버지와는 달리 신심이 전혀 없습니다. 진짜 기독교인은 드러내지 않습니다.

북한에 대학교를 사랑의교회가 세우고자 한다는데, 참으로 귀중한 시도입니다. 철저히 당성을 점검하고 입학시키겠지만 그들 중에도 기독교를 참답게 받아들이는 여지를 가진 자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북한에는 도시라 할지라도 지방에는 감기약 하나 없습니다. 참으로 내 눈으로 그들을 보고 온 지금 잠이 오지 않고 가슴이 아픕니다.

내가 먼저 구원받는 것보다 북의 수천만 동포를 위해 꼭 이 구원의 소식을 전해 그들을 살려주시기를 부탁합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나는 여한이 없겠습니다. 기독교가 북한에 들어가게 되면 악마의 집단과 같은 그 정권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러니 속히 그곳에 들어가 그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로 넘어온 후에는 박 0 신부, 강00 목사 등과 교우하고 있고, 그 외에도 명망 있는 종교계 지도자들과의 만남도 많이 가졌고 토론도 했습니다.

여러 종교계 인사들을 만났지만, 선생님들처럼 ‘예수 믿으라!’라고 나에게 권한 사람은 한 분도 없었습니다. 좀 더 일찍 이 복음을 들었다면….

나는 여기 살러 온 사람이 아닙니다. 너무도 잘못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죽어가는 내 동포를 차마 보고 있을 수 없고, 또 나 자신 지난 세월 저지른 과오를 사죄받기 위해 넘어왔습니다.

나를 위해 귀한 말씀 전하러 와 주셔서 매우 황송하고 고맙습니다. 나의 생명보다는 내 가족의 생명, 내 가족의 생명보다는 우리나라 전체의 생명, 우리나라 전체의 생명보다는 지구 전 인류의 생명이 더 소중한 것 아닙니까? 그러니 나보다도 더 우선해 어느 방향, 어떤 길로든지 속히 들어가 북한 동포들에게 이 사랑을 전해주세요.

기독교는 일제로부터 식민 지배를 당할 때도 유일하게 항거했을 만치 그 정신적 힘이 지대해, 선생님들처럼 구원의 확신으로 사는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늘 부러워했었습니다. 나도 저렇게 되려면 많은 수양을 거쳐야 하지 않겠나 생각했는데, 이렇게 영생을 거저 주신다고 하니 염치없이 받겠다고는 했지만 아직 마음에 확신이 부족합니다.

나도 여러 교계 지도자들과 만나 이야기 나누면서 어떻게 하면 기독교가 하나로 연합할 수 있겠는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교회는 끼리끼리만 돌보는 이기적인 집단이 되기보다는 사랑으로 북의 동포들을 품고 섬기는 데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한국교회가 하나 되어 북한 동포를 살려내는데 힘을 쏟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한국교회가 북한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 얼마든지 자문하는 역할을 할 용의가 있습니다.

나 같은 사람보다 더 우선적으로 북한의 동포를 구원해 주십시오

북한에서 넘어온 나의 동무들을 만나보니 어떤 친구는 확신을 갖고 예수를 믿고 있으나 어떤 동무는 나와 다를 바 없는 동무들도 있더군요.

요즘 나는 가족사진을 보지 않습니다. 나로 인해 죽어간 가족의 얼굴을 보게 되면 잠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생은 생각해 보았으나 천국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복음 듣고 영접 기도를 한 후 나에게 확신이 생겼습니다. (영접 기도할 때 잡은 손을 두 번 꽉 잡아 주었다)

70이 넘은 나이가 되었다고 나이 숫자에 함몰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한으로 넘어와 이곳에 있는 분들이 잘 대우해 주어 나는 편하게 지내고 있지만 다만 북쪽이 걱정입니다.”

위의 내용 한마디 한마디는 제가 황장엽 비서를 만나 복음을 나눌 때 그분이 언급한 내용입니다. 오늘날에 와서도 그분이 말한 것 중에 점점 뚜렷하게 귓전을 때리는 말은 “어떤 경로로든지 북한 인민들을 좀 접촉해 달라!” “그들이 내가 들은 이 복음을 꼭 듣도록 힘써달라!” 하는 간절한 음성의 요청입니다.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서 신문을 보는 황장엽 전 비서.

복음통일을 위한 믿음의 기도

저는 이번에 이 원고를 쓰면서 다시 듣게 된 황 비서의 요청이야말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시대적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불어 이런 생각을 주님은 저에게 주셨습니다. 교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북한을 바라보는 너의 마음이 다분히 교만하다!” 지적하시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쳐다보고 기도하고 품으라고 하십니다.

“경제적으로 우리가 월등히 잘산다, 북한은 가장 인권 보호를 못 받는 나라,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없는 나라다!” 현실이 그렇다고 해도 선교적 비전의 눈으로도 이런 식으로 보며 다분히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대할 뿐 진정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품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입니다.

한편, 한국교회가 잘못 걸어가는 몇몇 모습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계속 걸어간다면 성경에 나와 있는 사례(왕하 25장) 중 예루살렘이 붕괴하고 바벨론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끌려갔듯이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시적이나마 북한에 짓밟히게 하실 수도 있지 않겠느냐 하는 섬찟한 생각도 솟아났습니다. 우리를 완전히 멸하도록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고치시기 위해서 그러실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저 자신은 크게 회개했습니다. 그런 이후, 하나님은 북에서 바알에 무릎 꿇지 않고 은밀한 지하 공동체에서 피눈물로 기도하며, 혹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모진 환경에서 버티고 있는 지하교회 성도를 다시 합쳐진 한반도에다 하나님의 광명을 회복시키는 거룩한 촉매로 사용하실 것이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을 사용하셔서 제2의 평양 대부흥 운동과 대각성을 한민족에게 허락하시리라는 예상도 감히 해봅니다.

이제, 담대히 두드려라

선교지에서는 자칫 잘사는 나라에서 온 선교사가 교만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좋은 프로그램과 넉넉한 재정이 힘이고 부흥의 열쇠라고 여기고 때로는 돈 자랑하듯이 속성으로 건물들을 후딱 세우고는 건물 이름이나 교회 이름도 한국식 이름을 섞어 개명을 하기도 합니다. 모국의 웅장한 교회당과 모이는 성도의 수를 자랑하기도 합니다. 선교지 교회 건축을 후원하고서 교회 이름에 한국 단어를 추가해 개명하는 사례로 인해 선교지 교인들은 자기들을 영적으로 다시 한번 더 식민 지배하려 한다고 소감을 피력하는 것을 직접 들은 적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느 나라를 가든지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라고 낮추어 보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진정 사랑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선교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더욱 절감하며 오늘날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불러일으켜 주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인해 이번에 원고를 쓰면서 제가 받은바 은혜는 너무나도 큽니다.

이제 저는 열대지방에서 사역하다 돌아와서 국내에서 사역하고 있지만 다시금 북한과 러시아 중국을 아우르는 선교단체의 회원으로 맺어주시며 친히 이끄시는 주님의 손길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우월적인 자세, 교만한 자세가 아니라 정말 낮은 자세로 그들을 품고 눈물로 기도하며 섬기는 일꾼이 되어 하나님 앞에서 작으나마 쓰임 받아야겠다는 각오를 하게 되었습니다.

눈물로 기도할 때 “이제, 두드려라!”라는 마음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두드리라는 명령은 저에게 있어서 황장엽 비서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황장엽 비서에게 복음을 전했고, 복음을 듣고 영접한 황 비서도 천국 가셨으니 그 한 사람에게 전하는 사명을 마쳤다고 주님의 명령이 종료된 것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도하다가 때가 이르면 두드리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며, 들으면 주저 없이 담대히 두드리면 놀라운 변화와 생명의 열매를 경험하게 된다고 믿습니다.

황 비서는 당시, 북의 동포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 것은 식량이 부족해서만이 아니라 그들에게 소망이 없고 고난을 이겨 낼 꿈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시고는 그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기독교 안에 있다고 하며 기독교 선생들이 어서 빨리 북으로 들어가 그들에게 소망과 비전을 심어달라고, 어떤 길로든지 어서 들어가 그들을 살려 달라고 간곡히 말씀하신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출애굽기 14장의 말씀을 가만히 묵상하는 중에 북한 선교도 러시아나 중국 선교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눈으로 바라볼 때 모든 점에서 정말 길이 없고 답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모세처럼 손을 펼쳐 믿음의 기도를 눈물로 올려드릴 때,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갈라 마른 땅으로 변하게 하시어 길을 열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복음 전도 대상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것은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북한을 품고 피 흘림이 없는 평화적 복음 통일을 외치며 한국교회가 기도한다면, 도저히 길이 없다고 포기할 만한 여건과 환경에서도 주님의 때에 길이 열리고 통일이 실제화되는 경이적인 기적으로 주님이 응답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할렐루야!

/원고 정리 : 채학철 장로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