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회복]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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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법칙은 모든 생명체에 작용한다. 그것은 성장과 발전, 치료의 과정에서도 역사(役事)한다. 자연 법칙은 우리가 거의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은밀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우리가 질병에 걸렸을 때, 순간적으로 치료의 역사가 나타났음을 보게 된다. 바로 기적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연 법칙과 상관없이 직접적으로 일하기도 하시기 때문이다. 가나 혼인 잔치에서 만들어졌던 포도주는 정상적인 발효 과정이 생략되었다. 우리 주님께서는 물만 가지고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기 때문이다. 초자연적이다. 기적(奇跡)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바로 창조라는 것이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이런 기적이 우리를 놀라게 할 수는 없다.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연 법칙에 얽매이지 않으신다. 원하실 때는 자신의 영광과 능력과 위엄을 나타내시되 예외적으로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실 수 있다. 우리는 이를 기적이라고 부른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穹蒼)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이 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신(神)의 성품에 참예(參詣, Worship, 하나님께 나아가 뵈옴)하도록 하셨다. 이를 행하신 이가 우리 구주 주님이신 것을 보여 주신다. 우리를 위해 행하실 수 있음을 나타내 주신다. 우리는 이를 표적(表迹)이라고 부른다. 그 표적의 하나로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느낀다. 우리의 마음이 세상의 그 무엇을 준다 해도 주님을 떠날 수 없음을 알고 느끼며 확신한다. 이것이 바로 주님과 우리 사이에 형성된 인격적 관계이다.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우리는 해와 달을 주셨음에도 감사를 드려야 한다. 꽃들을 주셨음을 감사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의존해 살고 있음을 어느 날 어느 순간에 알고 깨달으며 감사를 드린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는 고백이 나온다.

우리 주님께서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다.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다. 그러나 신성(神性)으로는 하나님이셨다. 메시아의 모습으로 충만하셨다. 겸손한 모습을 나타내 보이셨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신 사랑이 충만하셔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신다.

주님께서는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를 친밀하게, 개별적으로 알고 계셨다. 지금은 우리의 두려움, 염려, 문제, 불안, 어려움 등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나이다.” 완전하고 온전한 구주이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 안에 거(居)하는 것이다.

“항아리에 물을 채워라.”그 명령을 지켜야 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 여기에서 순종해야 한다. 그것이 경건한 삶이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라.” 

날마다 성경을 전심(全心)으로 읽고 깨닫게 해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성령께서 조명해 주시기를 구해야 한다.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성령께서 임재하고 계신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믿고 순종하며 의지하는 삶으로 주님께 영광을 드려야 신자로서의 거룩하고 경건한 삶이다. ‘예수여! 주님을 생각만 해도 내 마음이 달콤함으로 채워지나이다!’ 진정한 기독교는 충만한 삶이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그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선을 행한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아멘.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장로문인협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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