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좋은 사회란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선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모든 국민이 부자가 되어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강대국이 꼭 좋은 사회는 아닐 것이다.
오래전 김구 선생이 나의 소원이라는 글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나라는 문화적으로 한없이 강한 나라라고 했다. 문화 강국이 그의 소원이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소득이 높은 선진국이 되었고, 기술 강국으로 세계가 부러워하는 최첨단 국가가 되었을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 전 세계를 매료시키는 문화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대중음악, 영화, 음식, 화장품, 문학, 고전음악 등 우리의 삶과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한국의 거의 모든 문화 분야에서 전 세계인이 열광하는 매력적인 문화 강국이 되었다.
이런 기적을 이룬 나라에서 모든 국민이 만족하고 행복할 것도 같은데 젊은이들은 헬조선이라는 자조적인 생각을 하고 기성세대는 정치에 불만을 품으며 출산율은 세계적으로 낮고 자살률 또한 세계 1위를 기록할 정도로 불만족스럽게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정치는 그렇게 엉망일까? 정치인들은 이념으로 지역으로 세대로 갈라져서 서로 반목하고 적대시하며, 막말과 비아냥과 부도덕성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서양이 생각하지 못했던 단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루었지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정신적인 혁신이 아닐까 한다. 개신교와 가톨릭을 합하면 전체 인구의 30%나 되는데도 우리 사회가 이렇게 기독교 정신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면 먼저 우리 기독교인들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 지금까지 교회가 혹시 경쟁적으로 더 잘살아 보겠다고 하는 기복신앙에 매달리지 않았나? 나만이 옳고 타인은 틀렸다는 확신으로 자기의에 매달리는 바리새인과 같이 행동해 왔던 것은 아닐까?
반면에 영국은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가 복음주의 운동으로 사회의 정신혁명을 일으키고, 그 바탕 위에서 산업혁명으로 인한 물질문명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었다. 영국의 복음주의는 청교도운동과 요한 웨슬리의 감리교운동으로 대표된다고 할 수 있다. 1678년 존 번연의 『천로역정』은 영국에서 성경만큼 보급되어 영국민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영국의 종교적 부흥의 씨앗이 되었다. 1730년대부터 시작된 존 웨슬리와 조지 휫필드가 이끄는 감리교운동은 근면, 정직, 경건을 추구함으로써 영국사회에 큰 빛을 비추었다. 이러한 갱신운동으로 국민성이 밝아졌으며 높은 도덕성을 갖추고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는 문명사회를 먼저 이룩했던 것이다.
영국의 기독교 복음주의 운동은 사회 여러 분야에 퍼져나가서, 윌버포스의 노예제 폐지 운동, 노동자의 복지를 위한 협동조합 운동, 엘리자베스 프라이의 감옥환경개선 운동, 시드니와 베아트리체 웹의 사회주의 운동, 그리고 무수한 자선병원, 자선학교, 고아원, 양로원 설립 등 영국사회를 복지사회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이러한 사회개혁의 결과 영국에서는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가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자본주의의 탐욕과 불평등을 완화하고 복지국가의 기본틀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개신교의 정신은 약자를 돕는 사랑의 정신, 모든 직업은 하나님의 소명이라 여기는 직업윤리, 그리고 물질적 성공과 부가 모두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으로 세상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는 청지기정신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정신이 국민 개개인의 마음을 변화시켜 선한 기풍이 흐르는 선한 사회를 이룰 때, 우리 사회는 새로운 도덕성과 자유, 정의가 흘러넘치게 될 것이다.
김완진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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