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초나라 때의 일입니다. 무기를 파는 상인이 창 한 자루를 들어 보이며 이 창은 너무나 예리해서 어떤 견고한 방패라도 다 뚫을 수 있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러고는 이어서 방패 하나를 보이면서 이 방패는 너무나 단단해서 어떤 예리한 창이라도 뚫을 수 없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러자 그 얘기를 듣고 있던 구경꾼 하나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당신의 창은 모든 방패를 뚫고, 당신의 방패는 모든 창을 막는다면서요? 그렇다면 당신의 창으로 당신의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라고 묻자 그 상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창 ‘모(矛)’와 방패 ‘순(盾)’을 써서 ‘모순(矛盾)’이라는 말이 유래했으며, 이는 두 사실이 이치상 어긋나서 맞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모순은 단순히 언어유희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삶과 성경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엘리와 그의 두 아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의 직분을 가졌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그분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일삼았습니다. 이들은 제사장으로서 ‘세마포 에봇’을 입고 일상적인 상황은 물론, 나라의 위기 시에도 하나님의 뜻을 묻고 분별해야 할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직분과 상반된 삶을 살았습니다. 제사 드리러 온 사람들의 고기를 빼앗고, 여호와의 제사를 무시했으며, 성전에서 시중드는 여인들과 동침했습니다. 이처럼 그들은 신성한 제사장 직분과 상반된 행동으로 스스로의 권위를 훼손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라고 말하며, 겉으로 드러난 직무와 그들의 진실된 영적 상태 사이의 모순을 분명히 지적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어린 사무엘은 하나님을 섬기며 전혀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왜 이런 모순이 나타났습니까? 엘리의 두 아들이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있었지만, 원문을 자세히 보면 ‘페네()’ 즉 ‘Before(앞에)’입니다. 그들은 그저 하나님이라는 존재 ‘앞’에만 있었을 뿐, 진정한 관계 속에서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은 달랐습니다. 그 역시 “여호와 앞에서”라고 나오지만, 그는 “임()” 즉 ‘with’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과 함께’ 깊이 교제하며 영적으로 성장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는 에봇을 입을 자격이 없었지만, 하나님과 함께하며 점점 더 깊어진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교회에 나와 주님 없이 봉사하고, 헌금하며, 찬양하는 행위가 바로 엘리의 두 아들이 보인 모습입니다. 엘리의 두 아들은 겉모습만 신앙인처럼 보였을 뿐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에봇을 입었는지, 어떤 환경에 있었는지, 얼마나 봉사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진정으로 함께 교제했는지가 중요합니다.
김한호 목사
<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디아코니아 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