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긴과 보아스] 네가 축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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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한다. 1-11장까지의 전반부와 12-50장까지의 후반부이다. 전자는 원역사라고 하는데, 창조-타락-구속의 구조로 이루어졌다. 가인(가죽옷)-아벨-셋으로 이어진다. 인간타락–후회–노아홍수, 이들은 구속의 끈을 붙잡고 다시 시작한다. 그러나 다시 바벨탑을 세운다. 이것이 원역사의 줄거리이다. 창세기 12장부터 시작되는 부분은 이스라엘의 역사이다. 족장들의 역사이다. 누가 족장인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직접 들은 자이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다. 요셉은 아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12:1) 이 말씀은 이스라엘 역사의 포문을 연다. 이곳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이다. 무엇을 떠나느냐? ①‘너희 고향’은 가장 익숙하고 친근감이 있는 곳이다. ②‘친척’은 도움을 구하기 가장 편안한 대상이다. ③‘아버지 집’은 대체 존재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익숙한 이곳을 ‘떠나가라’고 하신다. 이곳은 가본 적도 없다. 이런 의미에서 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순종하라’이다. 성도의 삶의 첫 걸음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지난주 설교 말씀을 듣고 멈추어 있는 자가 있고, 들은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자가 있다. 이스라엘 역사의 포문은 순종으로부터 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에게 너무 익숙하고, 안정과 편안함을 주는 것으로부터 떠나야 된다는 생각을 해보았는가? 아니면 말씀과 내 삶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축복은 떠남으로 시작된다는 진리의 말씀을 기억하길 바란다. 

창세기 12장 3절은 ‘축복하며 사는 발걸음이 행복이다’는 것을 말해준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 12:3) 네가 복이기 때문이다. 이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받은 복을 나누어 주라’ ‘네가 축복하라’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떤가? 성도의 삶이란 무엇인가? ‘순종 없이는 축복도 없다’ ‘순종 없이는 성장도 없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순종은 신앙의 과정일 뿐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어떤 이는 ‘축복’을 강조한다. 축복만 강조하면 기복신앙에 빠질 우려가 있다. 그러나 순종과 축복을 넘어 ‘모든 족속을 축복하라’ 지금 나는 어디쯤 와 있는가?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 가정이 복 받았으면 좋겠다. 여러분 직장이 복 받았으면 좋겠다. ‘우리끼리만 부흥하면 무엇 하는가?’ 우리만 좋은 것이 아니라 교회 밖의 사람들이 OO교회가 있어서 좋다고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저 교회 때문에 우리가 복 받았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 ‘그럼 그렇지, 저 사람, OO교회 성도이다’ 여러분 삶의 현장에서 복된 자로 살아감으로, 저 사람이 있어서 우리가 좋다. 3절 말씀 읽고 ‘너를 나로 바꿔서 읽고 축복하길 바란다’ ‘이웃을 축복하는 내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본문에서 ‘복’은 ‘바라크()’이다. 시편 1편에는 ‘아쉬레()’이다. ‘아쉬레’는 ‘에쉐르()’의 복수형으로 ‘곧다, 똑바로 가다’란 일차적 의미에서 ‘번영하다, 성공하다’란 파생적 의미를 담아낸다. 이는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삶의 길을 똑바로 걸어가는 것 자체가 곧 복이며, 이런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번영과 성공이 곧 복이다. 복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나님은 복 있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는데, 여러분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 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고 있는가?’ 축복은 떠남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했는데, 무엇으로부터 떠나야 하는가? 우리는 떠남 없이 축복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 주님은 우리에게 ‘네가 축복하라’고 말씀하신다.

황순환 목사

<서원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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