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병으로 논산 훈련소에서 그 고되고 어려운 신병 훈련 과정을 마치고 경리병과로 분류되어 경상북도 경산에 있는 육군경리학교로 실무교육을 받기 위해 배치되었다. 말하자면 그때의 대학 재학중인 학력과 훈련병의 성적, 그리고 나의 희망적 견해와 상황이 참조된 결과였다.
육군경리학교는 훈련소에 비해 모든 것이 달랐다. 우선 주위의 분위기가 훈련병 시절을 마친 전우들이라 우선 조금은 여유로웠고 다들 지성적인 어느 정도 인격과 품행을 갖춘 모습으로 비쳐졌다. 물론 학업성취도나 고학력을 갖춘 교육생들의 차출이라 더욱 그렇게 보였다.
같은 기수가 아닌데도 존댓말을 쓰며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모습에서 기간병들은 물론 수업을 주도하는 교관들도 어느 정도의 품위와 인격을 갖춘 서울의 일류대학 출신들이었다. 그리고 훈련시절과는 달리 많은 자유가 주어져서 한결 편했다.
이를테면 일주일 중 정한 날 그 시각에만 매점에서 갈 수 있다든가, 한정된 분량의 돈 이외는 필요 물품이나 주전부리를 구입 못하는 그런 억압적인 공포나 틀에 얽매인 구속은 아예 없었다. 마음의 여유를 어느 정도 갖고 보니 제대가 빨리 왔으면 하는 조급증으로 하루가 지루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일견 배울 것이 많은 나날들이었다. 대부분의 교생들이 전국 각지에서 온 대학 재학생 이상의 학력을 갖춘 자들로 서로 같은 처지와 환경을 겪다보니 은연 중 동료의식이 생성되기도 했다.
서울의 각 일류대학의 상과대학을 졸업한 교관들의 강의도 유익했으며 전문분야를 가르치며 이해 숙지시키고 활용도를 중심으로 가르침으로써 정규대학 수업과 조금도 다를 바 없어 마치 내가 신학대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기분이었다.
강의 또한 참으로 유효했다. 말하자면 새로운 많은 상업적 이론과 수리계산 영역에도 새로운 변별력을 가진 여러 유형의 문제들을 습득하는 참으로 유효한 시간들이었다.
이때의 많은 지식공유가 나중에 기업을 일으키는 내게 크나큰 산지식으로 활용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언제 어디서나 그때 그 시절의 시간적 세월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이후 참으로 유익한 새로운 인생 기반이 되는 전초임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당시 나는 거의 대학을 졸업했거나 대학 재학 중에 온 학생들로 이루어진 육군경리학교에서 어쩌면 이 과정이 내 인생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유익하게 보내려 가능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교과수업은 물론 수시로 학과시험을 볼 때도 전력을 다했으며 토요일이나 일요일의 자유 시간에도 동료들 모르게 교과목의 중요사항들을 외우며 난이도의 집중문제와 씨름하며 늘 1, 2등을 놓치지 않았다. 한편 불침번을 설 때도 배운 교과과정을 복습하며 암기함으로써 경리 분야에 어느 정도의 일가견과 소질을 쌓는 데 도움을 가질 수 있었다.
이는 원래 내가 육군경리학교에 입교할 때 학교장이 일정한 경리학교의 수업을 마치고 졸업할 때 전교 1, 2등을 하는 병사에게는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자대 배치를 해준다는 훈시에서 어떻게든 1등을 해서 당시만 하더라도 제일 인기가 있는 육군본부나 부산의 항만 사령부에 꼭 가고 싶다는 나의 목표에서였다. 마침내 육군경리학교를 2등으로 졸업하고 그렇게 가고 싶어 소망하던 부산의 항만사령부로 발령을 받았던 그때는 주체할 수 없는 감격 그 자체였다.
자대 배치에 필요한 소모품과 개인 필수품 등을 지급받고 여러 시간 후 부산역에 나 혼자 내릴 때는 땅거미가 짙어지는 어둑할 무렵이었다. 나도 모르게 한쪽을 바라보니 바다의 한 부분이 눈 안에 들어왔다. 역사 멀리로 확 공간이 틔어져 있는 곳에 어마어마하게 큰 배의 윗모습이 언뜻 보이고 왁자지껄한 부산의 사투리들로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충청북도 내륙의 오지에서 여태까지 살아온 내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바다가 너무나 경이롭고 신비롭게 다가왔다. 그때 어떤 해산물 냄새 같은 비릿한 내음의 해풍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제 이곳에서 남은 군대 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기뻐 휘파람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모두들 배치 받기를 희망하던 부산의 항만사령부 근처에 나홀로 서 있다니 어찌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대 일직 사관에게 신고를 하고 다음날 항만사령부의 경리부에 배치를 받고 보니, 내가 제일 쫄짜고 그 위로 부사관 한 명과 문관들 몇 명과 대위인 경리계장, 그리고 경리과장이 소령이었다.
사령부 체제이니 그러려니 생각했지만 처음부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언젠가 육군본부에 출장 가서 본 그 분위기 그 이상이었다. 그때 중령이 사무실 물걸레질을 하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는데 지금 여기선 내가 제일 쫄짜이니 힘들고 어렵고 곤혹스러운 모든 것은 자연 내 차지였다.
그러나 기분은 더할 수 없이 좋았다. 모든 것이 어느 정도 자유롭고 개개인의 일에 크게 간섭하지 않고 존중해 주는 것이 우선 마음에 들었다. 사령부의 분위기는 주변에 많은 미군부대의 영향을 받은 듯 자기가 부여받은 일만 성실히 하면 간섭하지 않는 민주적인 분위기였다. 그러나 군 병영이라 군기는 엄했지만 나는 조금씩 심신의 안정을 찾으며 적응해 갔다. 더구나 매주일 교회에 교우들과 더불어 나가는 것이 내게는 더할 수 없는 위안이요 축복이었다.
양한석 장로
• 문현중앙교회
• 시인
• 정치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