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은 언제 읽어도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매력이 있다. 분명히 읽은 적이 있건만 처음 듣는 말씀으로 생경스럽게 다가오는가 하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건만 실천은 부지 하세월인 말씀은 어디 한두 가지이던가?
우리교회가 새벽기도로 성경통독을 하는 3년 계획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제 그 3년의 새로운 통독이 시작되었다. 3개월씩을 한 단위로 해서 배열한 내용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성경의 순서대로 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순서를 목사님들이 연구하셔서 배열하고 새벽기도를 통해 전교인이 함께 묵상하며 기도한다. 그 통독이 다 끝나면 성지순례를 다녀온다.
그 가슴 설레는 여정이 9월에 새로 시작되었다. 이번에 출발은 마태복음이다. 예수님의 족보를 목사님의 설명을 들어가며 기도해가며 읽자니 그 은혜가 새삼스럽다. 왜 세상 눈으로 볼 때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여인들의 등장이 거기 기록되었을까? 그 해답은 믿음의 눈이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말씀을 들으면서 터득하고 그일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것은 믿음의 성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아아 부족한 나도 하나님은 받아주시겠구나 하는 위로가 우리를 품어줄 때 죄인의 가슴은 팔딱 거린다. 예수님은 진정으로 내 허물을 덮고 구원하시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마음을 한껏 춤추게 한다. 그 기쁨은 죄인만이 경험할 수 있으면서 회개를 참되게 했을 때만 가능해지는 일이다.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전도를 받았을 때 마음을 바꿔 보려고 성경을 펴고 마주 앉았다. 첫 장을 펴니 “태초에 말씀이…”로 시작되는 구약이 어려워서 몇 줄 못 읽고 덮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마음을 고쳐 먹고 신약은 좀 쉬우려나 싶어 펼쳐 들었을 때의 그 낭패감은 지금도 얼굴을 붉히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다. ‘누가 누구를 낳고’로 이어지는 내용을 몇 줄 따라가지 못하고 내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세상에 그 똑같은 말씀이 이 새벽에 이처럼 꿀송이 같이 달 수가 있다니 기막힌 일이 아니고 무엇이랴. 오 하나님 이 은혜 거두어 가지 마시옵소서, 죄인 용서하시고 허락하소서.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