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긴과 보아스] 엘리야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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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고층빌딩 옥상에 한 청년이 깊은 근심을 하다가 뛰어내릴 생각으로 모퉁이로 갔습니다. 난간에 오르려는 순간에 모퉁이 먼지에 뿌리를 내린 풀꽃을 보았습니다. 순간 발걸음은 멈춰지며 ‘아∼ 저 생명도 아무도 관심이 없는 열악한 곳에서 피어 자신의 존재감으로 사는데’라는 생각에 되돌아 내려왔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꽃이 한 생명을 살렸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선지자입니다. 엘리야에게는 많은 형용사가 붙습니다. 위대한 선지자, 의인, 능력의 사람 등입니다. 그러나 야고보서는 믿음의 기도를 설명하며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런데 그가 기도한즉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고, 다시 기도하니 비가 내렸답니다. 문맥으로 볼 때 엘리야의 기도도 들으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도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결실의 계절이요, 한 해를 결산해야 하는 때를 앞두고 엘리야를 생각하면 큰 위로가 됩니다. 엘리야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지만 그를 통해서도 큰 일을 이루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 그리고 나를 통해서도 놀라운 일을 이루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악한 왕의 대명사인 아합왕 때입니다. 아합은 바알 우상을 숭배하는 시돈 왕의 딸 이세벨과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수도인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을 세우고 우상을 숭배하도록 했습니다. 악하고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은 길르앗에 사는 엘리야를 쓰셨습니다. 옥상의 꽃과 같은 엘리야가 위대한 것이 아니라 그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이 위대하십니다. 

하나님의 쓰임을 받은 사람입니다. 누구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쓸모가 있는 존재입니다. 성경에 갑자기 출현한 엘리야가 아합왕앞에 서서 기근을 선포합니다. 길르앗의 촌부가 어떻게 왕 앞에서 그가 통치하는 나라에 가뭄을 선포할 수가 있었을까요. “내가 섬기는 살아 역사하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왕상 17:1)”입니다. 그의 용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자가 세상에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그릿시냇가로 보냄을 받고, 사르밧으로 보내시고, 다시 아합과 바알 선지자들 앞에 세우십니다. 하나님의 이루시는 일은 우리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구원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아닌 까마귀로 먹이시고, 사르밧의 가난한 과부의 한 움큼의 곡식 가루와 기름으로 비가 올 때까지 양식이 없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고 사르밧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려 주셨습니다(왕상 17:22). 하나님의 역사는 설명할 수 없으나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마술이나 요행이 아닙니다. 인간의 지식 이상의 초 지식이고, 인간이 깨달은 과학 이상의 과학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그 모든 질서를 주장하십니다. 엘리야를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같이 이루셨습니다(왕상 17:15, 16).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사르밧 여인이 고백합니다.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왕상 17:24)” 이 고백이 들려지기를 소망합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엘리야, 나의 능력이신 여호와, 혹은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이시다는 고백에서 그 해답을 찾아봅니다. 

이규동 목사

<동해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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