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적으로 물을 피해야 한다. 국물을 먹을 수 없으니 식사 때도 수저는 필요 없다. 수년을 젓가락만 사용했다. 그래도 복수는 늘어만 간다.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차후에 깨닫게 된 일이지만 밥, 찐 감자, 군고구마, 야채, 과일 등 모두 물을 포함하지 않은 것이 없다. 생감자를 갈아 즙을 내어 보았다. 찻잔으로 반 잔이 나온다. 이런데 어떻게 물을 금한단 말인가. 허탈하다.
수박-물을 상징하는 열매에 애증의 사연이 있다. 불그레하고 달짝지근하고 사근사근한 과육. 한 입 베어 물면 미각의 마른 신경망을 타고 전율처럼 전신에 퍼져가는 그 맛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건강하던 시절엔 이런 맛을 몰랐다. 감사를 모르고 사는 일이 너무 많다. 미각에 도취되어 수박을 먹다가는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먹기엔 달아도 먹고 나면 몸에 쓰다. 수박은 이뇨에 도움이 된다 하나 복수 환자에겐 독이다. 수박을 한 입 베어먹다가도 이를 악물고 내려놓아야 한다. ‘안 돼!’ 물, 물, 물. 욕구불만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복수로 만삭된 배를 움켜쥐고 뒹굴다 목줄이 타오르면 나는 공상의 나래를 펴고 폭포 계곡으로 여행을 떠난다. 싱그럽도록 푸르른 여름, 온 산이 녹음으로 가득한 한적한 곳, 수정처럼 맑고 얼음같이 차가운 심산계곡의 개울물이 아우성을 지르며 달려 내려오는 곳, 나는 그곳에 발을 담그고 앉는다. 시리도록 찬 기운이 발끝으로부터 리트머스 페이퍼처럼 온몸을 물들이며 머리까지 타고 오른다.
이 자연의 기운, 바로 하나님이 지으신 이 기운이 온몸을 감싸고 돌다가 이 몸의 병을 뿌리째 뽑아 들고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여름 산들바람에 실려 저 멀리멀리 날아가 버렸으면…. 흐르는 물은 촉각만을 간질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청각까지도 상쾌하게 한다. 작은 바위들을 부딪히며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졸졸 좔좔 달려 내려가는 물소리가 자연의 화음이 되어 정신을 안온케 한다. 흐르는 물 위에 정자를 짓는다. 수박, 참외, 자두, 수정과, 식혜를 한아름 물에 담궈 놓고 배가 터져라 먹고 마셔댄다. 그러다 화들짝 몽롱한 공상에서 깨어나면 눈앞에 버티고 있는 삭막한 현실에 ‘후-’ 긴 한숨만 나온다. 그래도 소망을 갖자. 머지않아 배가 터져라 시원한 생수를 마실 수 있는 꿈은 이루어지리라! 그날은 물맛을 만끽하리라.
김은진 목사
•홀여성선교회 회장
•마곡성은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