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2026 WBC’와 ‘천람경기(天覽競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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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5일부터 18일까지 약 2주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WBC (World Baseball Classic) 대회》는 경기의 내용도 재밌었거니와 경기 외적(外的)인 몇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우리의 관심을 끌면서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금년도 WBC대회에는 총 20개국이 참가해 4개조로 나뉘어 각조마다 5개 팀이 경쟁을 해 각각 상위 2개 팀이 8강의 진출 자격을 얻게 되어 있었다. 한국은 일본, 호주, 체코, 대만과 함께 C조에 속해있었는데 각 팀이 한 경기씩 남겨둔 상태에서 일본이 3승, 대만, 호주, 한국이 각각 2승1패로 동률을 이루었고 체코는 3패로 탈락한 상태였다. 

대만, 호주, 한국은 승패율(勝敗率)을 계산해 그 중 한 팀이 조2위의 자격으로 8강에 진출하게 되어 있었다. 한국이 8강에 진출할 수 있는 《경우의 수(Number of Cases)》는 호주를 반드시 2점 이하로 막고 5득점 이상으로 승리해야 하므로 8강 진출이 매우 힘들어 보였는데 뜻밖에도 한국이 호주에 드라마 같은 스코어 ‘7-2’로 승리함으로써 C조 2위로 8강에 합류하게 되었다. 8강 경기부터는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로 날아가 경기가 진행되므로 극적인 승리를 거둔 한국 선수들의 사기(士氣)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일본과 호주와의 경기에서는 『천람경기(天覽競技)』라는 다소 생소(生疎)한 용어가 등장하면서 일(日)도쿄돔 전체가 환호로 출렁이고 있었다. 『천람(天覽)』이란 “천황(天皇)의 관람(觀覽)”을 뜻하는 말이었다. 일본-호주의 시합 당일, 나루히토(德仁, 66) 천황이 마사코(雅子) 왕비와 딸 아이코(愛子) 공주와 함께 귀빈석에서 경기를 관전(觀戰)했는데 그날의 『천람경기』는 국제경기로는 1966년 아키히토(明仁) 천황부부가 일본-LA다저스 경기를 관람한 이후 무려 59년 4개월만의 역사적인 행차(行次)였다고 한다. 일본은 영국처럼 전통적으로 왕가(王家) 제도를 이어가고 있다. 영국인에게 여왕의 위치는 ‘국가의 상징적 대표자’로서, 국가원수이자 국가의 통합을 상징하는 자리인 것처럼 일본 천황(天皇)은 헌법상 국가의 상징이요, 일본 국민의 통합과 정체성(正體性)의 상징으로서의 지위를 지니고 있다. 

1980년대 초, 문 장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우리 반에 영국학생이 있었는데 당시 그는 “철(鐵)의 여인”으로 불리던 『대처(Thatcher, 1925~2013)』 수상에 대해 이따금 불만을 말했으나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하여는 『절대 존중』을 표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일본의 ‘천황’은 한국의 신문·방송 등에서는 ‘일왕(日王)’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인 호칭이지만 일본에서는 여전히 ‘천황(天皇)님(さま)’으로 부르며 절대 존중을 표하고 있다. 

한편, 보도에 따르면 ‘천황일가’는 경기 내내 쌍안경을 들고 양 팀의 경기를 유심히 지켜봤는데 경기 종료 후, 일본 선수단이 그라운드에 도열해 귀빈석을 향해 인사하자, 왕가의 세 사람은 미소로 손을 흔들며 일본 선수단에게 화답(和答)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뜻밖의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 천황 가족이 퇴장할 때, 중계 카메라는 일본 대표선수 「오타니(大谷)와 스즈키(鈴木)」 등을 비추고 있었는데 다른 일본 선수들은 박수를 치거나 손을 모으며 천황의 방문에 감사를 표한 반면, 그 앞에 있던 「무라카미(村上)」 선수가 껌을 씹으며 팔짱을 낀 채 서서 홀로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는 마치 2020년 일본 올림픽경기 당시, 한국의 강 모(姜 某) 선수가 껌을 질겅질겅 씹는 장면에서 당시 해설을 맡았던 선배 박찬호(1972~ ) 선수가 강 선수를 질책(叱責)하던 모습을 방불(彷彿)케 했다. 이에 일본 온라인 매체에서는 “천람경기 즉 어전시합(御前試合)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행동”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마이애미에 입성한 한국은 8강 경기에서 막강의 도미니카에 7회 콜드 ‘0-10’으로 충격패를 당했다. 역대 WBC에서 승승장구하던 일본도 8강전에서 베네수엘라에게 ‘8-5’로 패했고 결승전에서 미국을 ‘3-2’로 물리친 베네수엘라에게 우승 트로피가 돌아감으로 2026 WBC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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