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창] 의료선교사 강원희 장로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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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희 장로 최화순 권사 부부는 세브란스 출신 1호 의료선교사이다. 외과의사인 강 장로는 49세에 네팔 히말라야로 떠나 83세에 에티오피아에서 은퇴 귀국했다. 간호사 출신인 최 권사는 두 자녀를 대학에 보낸 후 합류했다. 부부는 네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에티오피아 등 네 나라에서 총 35년 간 의료 선교를 했다. 아프리카에 가 50년 간 원주민의 의료와 선교에 힘쓴 슈바이처 박사의 영향도 있었지만 연세를 다녔기에 선교사로 나갈 결심을 할 수 있었고 그동안 세상에 진 빚을 갚으려면 선교사가 되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혼자 사는게 아닌 만큼 누구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게 마련이고 무엇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빚더미에 올라 앉았는데 그 빚을 갚는 길은 선교사로 나가는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한국 전쟁 당시 피난 내려와 미션스쿨인 대광고를 거쳐 세브란스에 입학해 의사가 되었다. 아버지 형제 중 셋이 의사였다. 아버지도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가업인 상업을 물려받아야 했기 때문에 포기했단다. 대학 졸업 후 1970년 강원도 속초에서 개원을 했다.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삼태기로 고기가 몰리듯이 환자가 오는 곳이라고 했다. 병원은 환자가 많았다. 위 수술을 하면 치료비로 20만~25만원 받을 때 그는 3만~10만원을 받았다. 약자인 환자에게 치료를 구실로 돈을 받는게 마음에 걸려 실비만 받았다. 치료비가 낮으니 환자가 많았다. 개원 당시부터 주말이면 짬을 내 무의촌을 찾았다. 이렇게 시작한 무의촌 봉사는 1982년 의료선교를 나가긴 전까지 이어졌다. 가족, 친척에 심지어 섬기는 교회에서도 강 장로의 네팔 행을 반대했다. 그런데 부인 최 권사는 “‘나의 인생을 하나님께 바치고 싶은데 생선에 비유하면 머리와 꼬리가 아니라 가장 좋은 가운데 토막을 바치고 싶다. 자기 인생의 황금기를 선교에 쓰고 싶다’는데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고 회고한다.

부부는 동기인 김일순 세브란스 명예교수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강 장로는 뜻밖에 계속 환자를 진료하다보니 몇 년 후 환자를 보기 싫더라고 말했다. 군의관 시절을 포함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던 시절이 겹쳐졌다. 속초중앙교회에서 장로가 됐지만 그렇게 믿음이 좋은 장로도 아니었다며 웃는다. 그런데 희한하게 선교지에서 환자를 보기 싫었던 적이 없었다. 선교비도 많이 받을 수 있었지만 필요한 만큼만 받았다. 병원에서 환자보고 무의촌 다니다보면 돈쓸 기회도 별로 없어 진료에 전념하는게 나았다고 한다. 선교지에서는 현지어를 배워 환자들과 현지어로 소통했다. 그러나 그 나라를 떠나면 바로 그 다음날 그 나라의 아침 인사말도 잊어버리게 되더라고 말했다. 강 장로 부부는 네팔에서 세 번에 걸쳐 14년 간 활동했다. 마지막 임지 에티오피아엔 두 번 머물렀다. 강 장로는 후배들에게 정직하고 냉철하면서도 타인에 대한 관용의 정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정직하게 살면 후회가 없고 강직하게 살면 남들과 부딪혀 힘들죠. 그래서 지혜가 필요하다고 한다며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살아계신 사랑의 하나님은 제가 사용하는 하나님에 대한 수식어죠. 행복은 주 안에서 만족하는 삶이죠 인간은 본래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존재죠.” 주 안에서 여생이 평안하시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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