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왜 그 자리를 얻으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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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4.7 서울시장,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가 끝났다. 선거 후의 결과를 보며 사람들은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다’는 말들을 한다. 그런데 이 말이 꼭 맞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이 말은 정상적 민주주의가 정착된 사회에 합당한 말이다. 이제는 몰락한 공산주의 국가나 북한과 같은 독재 정권에서 이 말은 맞지 않는 말이다. 히틀러의 나치 정권처럼 불법한 국가 권력으로 무지한 민중을 선동해 거짓을 진실로 만들고 진실을 거짓으로 만드는 부정 선거를 수없이 볼 수 있다. 거창한 국가 정치에서의 선거가 아니라 해도 사람이 모인 곳은 항상 선거가 계속된다. 누구나 다 경험을 한 것처럼 필자도 학창 시절 반장 선거를 시작으로 몇 차례 공동체 구성원들의 마음을 얻어 그런 자리에서 일정한 역할을 해 본 경험이 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반드시 천심 즉 하나님의 마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사회에서도 종종 가짜 뉴스나 거짓 정보를 선전 유포하여 여론을 조작해서 뽑혀서는 안 될 사람이 뽑히고 그 결과로 공동체는 오히려 위해(危害)를 당한다. 그래서 이런 사회에서의 선거의 목적은 선량한 인물을 뽑는 것보다는 도토리 키 재기인 후보들 중에 더 나쁜 인물을 떨어뜨리는 것이라는 비관적 견해도 있다.

이제 우리 교단의 69개 노회가 봄 노회로 모이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팬데믹 상황이라 정상적인 노회 회집은 불가능하리라 생각된다. 이미 작년에 경험해 본 대로 이번 노회도 온라인으로 모이는 노회가 많을 것이다. 코로나19 이전 같았으면 봄 노회의 가장 큰 이슈는 총회 총대 선거인데 이번 봄 노회에서 어떻게 총대를 선출할 수 있는지 그 방법론을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인물을 선출하느냐이다. 노회를 대표해서 총회에 파송 받아 각 부서에서 실제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정직하고 능력이 있는 총대가 선출되어야 한다.
혹 총회 총대를 명예로 생각해서 일생 목회하면서 총회 총대 한 번 못 나가 보고 은퇴를 하게 됨을 섭섭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어떤 노회에서는 연장자 순서대로 경로우대 차원에서 총대 1명을 배분하는 노회들도 있다고 들었다. 총회 총대는 구경삼아 경력으로 파송 받는 것이 아니다. 또한 총회는 이름 없이 섬기는 종들로 가득해야지 내로라하는 정치꾼들이 군림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 105회기 통계위원회 보고에 따르면 우리 교단 목사 20,775명, 장로 32,511명 중에 각 각 750명 총대를 각 노회의 선거 규정에 따라 선출하려면 경쟁 아닌 경쟁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비성경적이고 비신앙적인 세상 정치와 다를 바 없는 부끄러운 짓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학연 지연 등의 줄서기와 교회의 크기 학벌 돈의 힘으로 뽑힌 인물이 우리 노회 총회에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자. 총회 총대나 총회 임원, 총회 각 부서의 임원을 세상의 감투처럼 생각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선거에 이기려고 하는 헛된 마음을 갖고 있다면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쓰시지 않을 것이다. 혹 사람의 마음은 얻어 그런 자리에 앉을 수는 있으나 하나님께는 버림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의 첫 왕인 사울은 하나님의 마음보다 사람의 마음을 얻어 왕위에 올랐으나 결국 그는 하나님께 버림을 당한다. 목동 다윗은 사람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으나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 사울에 이어 이스라엘의 두 번 째 왕이 되었다. 사람의 눈은 잠시 속일 수 있으나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 없다. 작년 총회를 섬길 기회가 되어 교회 앞에 광고를 하니 온 성도들이 우리 교회의 자랑이라고 축하를 해 주었다. 그런데 한 장로님이 조용히 찾아와 “그 어려운 일을 왜 하려고 하느냐?”고 걱정스런 말씀을 하셨다. 평생 한 교회만을 섬기고 조용한 은퇴를 얼마 남기지 않은 담임목사가 정치판에 뛰어들어 혹시 상처나 오명을 남기면 어쩌나 하는 장로님의 사랑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왜 노회와 총회에서 꼭 그 자리에 내가 있기를 원하는가? 그 이유는 주님의 부르심과 맡겨주심에 순종하려고 하는 겸손한 종의 마음 때문이어야 하지 않는가?

이성주 목사
<총회 정치부장·진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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