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애기봉에서 평화의 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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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서 70년대를 이어가며 성탄절이 다가오면 김포반도 북단 애기봉에 서울에서 교회 찬양대가 찾아와 북한을 향해 성탄 찬송과 캐롤을 부르며 예수 나신 기쁜 소식을 전하고 평화의 은총이 한반도에 펼쳐지기를 기원했다.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에 불을 밝히고 고성능 확성기로 거룩한 찬양의 울림을 강 건너 어둠의 땅으로 올려 보내는 이 행사는 TV방송이 현장 중계하고 신문들도 이튿날 조간 1면에 크게 실어 연말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효과를 냈다. 그런데 해를 거듭하면서 북한당국이 이 성탄절 찬양을 비롯한 전방지대에서의 대북 확성기 방송에 대하여 차츰 격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포격으로 남쪽의 시설을 파괴하겠다는 위협을 들고 나왔다. 

북측의 공갈에 위축되어서는 안될 터이고, 다만 남북간의 긴장이 악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우리 국방당국은 휴전이래 대북 심리전의 일환으로 계속되어온 확성기 방송을 줄이는 한편 애기봉의 크리스마스 트리 철탑을 철거하였다. 여러 해가 지나 그곳에는 『애기봉평화생태공원』이 새로이 건설되어 지역의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 얼마인지는 모르나 큰 예산을 들인 김포시와 군(해병대)당국으로서는 이곳이 시민들을 위한 안보교육, 생태환경교육의 시설로서 중요하게 쓰이기를 기대하는데 개장 후 몇 달 동안 한산한 모습이다가 오늘의 처참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인지 방문객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젊은 시절 신문기자로 성탄절 애기봉 행사 취재를 다녀본 기억이 있는 필자는 금년에 시설이 완공되자마자 북한 황해도가 고향인 아내를 대동하고 이곳을 다시 방문한 즉 그 달라진 모습이 놀라웠다. 군부대 사격훈련에서 나온 탄피들을 거두어 녹여서 『통일의 탑』을 세웠는데 통일을 상징하는 U(Unification)자 모양을 위아래로 연결한 독특한 형태이고 거기에 거대한 『평화의 종』을 매달았다. 방문객이 타종하면 소리가 1㎞ 강폭의 조강(임진강, 한강, 예성강이 모이는 애기봉 앞 수역의 이름이다)을 건너 북한땅 개풍군을 울리고 그 너머 송악산에 이른다고 한다. 전망대의 망원경에 들어오는 북한 마을은 조용하기만 하고 어떻게 감추었는지 군사시설다운 것은 보이지 않는다. 언덕아래 자리잡은 우리 시설은 강당과 야외공연장, 전시장, 카페 등을 갖추어 시중의 여느 문화센터보다도 다양한 기능을 할 수 있게 했다. 

지난 두어 달 동안 여러 차례 친구 친지들을 안내하여 애기봉을 방문하면서 나는 지자체를 포함한 우리 정부당국의 지대한 평화지향 노력을 보았다. 안내 팸플릿이나 전망대 해설에나 예전같으면 주된 내용이었을 북쪽의 군사위협에 대한 설명은 자취를 감추었고 오직 남과 북이 마주보는 이 지역의 지리적, 환경적 특징 소개에 치중하고 있어 방문자들은 스스로의 판단으로 분단조국의 오늘과 내일에 대한 각오를 다지게 된다. 애기봉에 온 사람들은 이미 TV를 통해 북한의 화성-15호, 화성-17호 로켓의 발사장면을 보았고 평양시내에서 주야간 벌어지는 무력시위를 거듭거듭 보았으니 여기까지 와서 무슨 위협을 더 새길 것이 있겠는가, 강 건너 북쪽 땅을 두 눈으로 바라보면서 사람들이 70년 넘게 갈라져 있는 조국의 비극적 현실에 대해 새로운 감회에 젖는 것, 이것이 애기봉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인가 보다. 

북을 향해 크리스마스 찬양을 소리 높여 부르던 추억을 안고 오늘은 평화의 종을 치면 된다.

김명식 장로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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