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어떻게 기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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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모두 응답된다면 세상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질서가 있을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미국 남북 전쟁 때 남부와 북부에는 모두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서로가 자신들의 승리를 위해 기도했다. 북부가 승리했다. 그리고 링컨 대통령의 노예 해방 선언이 있을 수 있었다.

응답되지 않는 것도 은혜라고 받아들일 수 있으면 성숙한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시시때때로 필요에 따라 부르짖는 기도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나님께서 그때마다 자비와 긍휼의 은혜를 허락해 주시기 때문이다. 기도는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은 하나님의 선하고 정하신 뜻대로 움직여 나간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시다. 

비록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마음에 소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병 낫기를 기도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이다.

자녀들이 건강하고 온전한 성품(性稟)으로 성장해 가도록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신다. 믿음은 우리 모두의 변화를 가져온다. 믿음의 기도는 몸과 영과 혼의 조화이다. 기도는 인체 안에 있는 치유 시스템의 기적을 불러올 수 있다. 예수님께서 물으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 제가 낫기를 원합니다”라고 답해야 한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 하였겠나이다”하면서 원망(?)했다. 주님께서는 꾸짖지 않으셨다. 측은히 여기셨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신다.” ‘성령께서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시편에는 탄식의 시가 많이 나온다. 기도할 때 탄식으로 간구를 드려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연약한 우리 인간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좋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신음소리를 들어 주신다. 성경에는 7,000~8,000가지의 약속이 있다고 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해야 한다. 시편에는 원수들을 저주하는 격렬한 시도 있다. 기도할 때 우리의 한숨과 한탄과 격렬한 감정까지도 하나님 앞에 토로해도 될 것이다. 연약한 인간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해 기도해야 할 의무가 있다. 쉬지 말고 기도하면 응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필자도 원치 않는 질병을 얻었다. 형언하기 어려운 고통을 받는 때도 있다. 새벽이면 서재에서 혼자 간절하고 절실한 심정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간구하며 떼를 쓰다시피 기도를 드리고 있다. 나의 병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를 기도한다. 

죄의 고백과 회개하는 기도는 근심과 두려움과 죄책감을 없애준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하게 되고 소통하는 통로를 회복시켜 준다.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열 수 있다. 기도하는 중에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맡겨 드린다. 온전하고 평안한 삶이 찾아온다. 죄를 고백하며 회개하는 기도에는 반드시 용서해 주시고 응답해 주실 것을 믿는다. 허물을 사(赦)해 주시고 죄를 가려 주신다고 약속해 주셨다. 하나님은 선하고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신 분임을 믿는다. 나의 피난처요 내 마음의 반석이 되신다.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다.

우리는 포도나무 가지다. 줄기에 붙은 채로 가만히 있기만 하면 열매를 맺는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때가 있다. 성령님이 내 안에 머물러 계심을 느낄 때도 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빛이 느껴지는 시간이 있다.

일본의 유명한 그리스도인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얘기다. 믿지 않는 친구를 위해 예수 영접하기를 기도했는데 30년 만에 응답이 되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사용될 준비를 갖추고 있으면 우리 주님께서는 날마다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다고 믿는다. 어린 아이 같은 믿음, 포기하지 않는 기도가 필요하다. 환난과 고통을 인내로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옳다.

넬슨 만델라는 원망과 복수가 아니라 관용과 화해의 마음으로 27년 간의 감옥생활을 견뎌낸 것은 “오직 은혜 때문이었다”고 고백했다. 기도로 성령님과 동행하면서 감옥살이를 했다. 은혜는 부드러운 보슬비처럼 우리 마음에 내린다. 사막을 떠도는 유목민들이 비를 기다리듯이 은혜를 갈망한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0~21)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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