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행복을 담는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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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젊은 남자의 꿈에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꿈에 나타난 천사는 뭔가를 열심히 포장하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무엇을 포장하는지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천사님!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포장하고 계십니까?” 천사가 미소를 지으며 남자에게 말했습니다. “행복을 포장하고 있답니다. 다가올 새해를 맞아 사람들에게 나눠줄 행복을요!”

남자는 다시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포장을 단단하고 튼튼하게 하세요?” “사람들에게 전해주려면 너무 멀기도 하고 도착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튼튼하게 포장하고 있답니다.” “아! 그러셨군요. 그런데 그 포장지는 무엇으로 만들어졌나요?” “이 포장지는 ‘고난’입니다. 이것을 벗기지 않으면 행복이란 선물을 받을 수 없답니다.”

천사가 떠나려고 하자 남자는 다시 물었습니다. “천사님! 그 고난이라는 단단하고 튼튼한  포장은 어떻게 하면 열 수가 있나요?” 천사는 미소 지으며 말했습니다. “고난이란 포장을 쉽게 열 수 있는 열쇠는 바로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겁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간다면 포장은 스스로 벗겨지며 행복이란 선물을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그 말을 남긴 채 천사는 사라져 버렸고 남자도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숱한 고난을 만납니다. 이를테면 숱한 고난과 절망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조물주의 적절한 ‘특효약의 처방’인 셈입니다.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한 사람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은 그들이 자신의 고난을 고난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피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그 고난의 시간을 극복했습니다. 조물주께서는 우리에게 감당할만한 고난만 허락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고난을 허락하실 때에는 극복할 방법도 이미 열어놓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옵니다. 그 고난을 극복할 방법을 찾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봅니다. 맞습니다. 감당하지 못하는 시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지 못하는 시련이 있을 뿐입니다. 그들이 역경과 고난의 시간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끝내 극복하려는 실천이 없었다면 행복한 시간이 찾아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역경과 고난을 통해 단련된 후에야 사람은 비로소 제 값을 할 수 있다는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인생의 고난과 행복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고난을 뒤집으면 곧바로 행복이 됩니다.

사도 바울에게 고난과 환난이 필요했다면 우리들에게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필요합니다. 고난은 진정한 믿음과 진정한 사랑과 진정한 소망을 가지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축복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깨닫고 알아야 할 사실은 봄이 와도 봄이 온 줄 모르고 겨울의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고, 겨울에도 따뜻한 봄의 삶을 연주하며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코로나라고 하는 역병(疫病)이 가져온 위기가 전 세계에 몰아 닥쳤지만, 그것을 대하는 태도와 대응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릅니다. 개인도 다르고, 국가와 사회도 다릅니다. 교회도 서로 다르게 대처했습니다. 

사람은 자연의 환경과 역사의 도전에 무조건 순응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을 생각하며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지만 어떤 사람은 작은 일에도 크게 낙심하며 불안해합니다. 사실 행복과 불행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사순절 기간 중에 있습니다. 기독교 복음의 중심은 십자가이고 십자가의 중심은 고난과 죽음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누구나 고난도 싫어하고 죽음도 싫어합니다. 특히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현세주의에 빠진 오늘 우리의 세대는 고난도 불편도 수고도 희생도 모두 싫어합니다. 그런데 성경(벧전 4:13)은 고난이 기쁨이라고 말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골고다의 고난이 없었다면 부활의 영광도 없었을 것입니다. 고난이 클수록 더 큰 기쁨이 있다는 것이 부활의 약속입니다. 이것이 곧 우리가 고난을 기쁘게 여기고 부끄럽게 여기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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