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저일 생각하니] 우리 정국이는 졸업장 안 주는 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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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독립문 대신중학교 3학년 담임 때의 일이다. 내 반 문제학생 정국이가 노상 가게를 뜯고 도둑질을 했다. 서대문경찰서 형사의 연락을 받고 찾아간 나는 경찰서에 잡혀 있는 정국이를 데려왔다. 학교에서는 지도부 주최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담임이 책임 선도할테니 퇴학은 시키지 말자했다. 네 번까지 이어진 도둑질은 내가 강력히 퇴학을 막았다. 네 번째는 교회 나가시는 교장선생님도 참여한 징계위원회에서 담임의 변호 만류로 징계처분이 안 되니 다섯 번째 사고 내면 담임은 아무 소리 않기로 하고 네 번째까지 정국이 징계를 용서 받았다. 담임의 고충도 아랑곳없이 정국이는 다섯 번째 절도행위로 사고를 저질렀다. 

이미 담임은 더 이상 문제학생을 변호 않기로 한 약속 때문에 졸업 한 달 앞두고 정국이는 퇴학처분을 받았다. 담임인 나의 마음이 아팠다. 나의 기도와 노력이 부족했다. 학교도 마태 18장 21절 22절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일곱 번에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그 말씀대로 용서없이 정국이를 졸업 앞두고 퇴학처분의 징계를 결정했다. 담임이 변호할 최후 길도 미리 막아놓은 것이다. 끝까지 호소해 보지 못안 내가 한없이 나약해 보였다. 정국이 어머니는 경남 합천에서 아들 하나 데리고 상경하여 바나공장에 다니며 가난 속에도 대신중학교 다니는 정국이가 희망이었다. 그런 어머니의 사랑과 꿈도 헤아리지 못하는 불쌍한 정국이는 1.2학년 때도 저지른 사고 기록이 학생부에 수두룩했다. 3학년 내 반에 온 정국이를 나는 따로 불러 3학년 때는 새 사람되어 공부 열심히 하라고 깊이 타 일러 주었다. 무사히 학교 출석 잘 하던 정국이는 졸업 무렵 어머니도 담임도 실망시키며 배신행위를 한 것이다. 

또 절도행위하면 퇴학이라고 몇 번을 경고해 주었으나 쇠 귀에 경읽기였다. 탈선행위가 많은 아들 정국이에게 거는 어머니 희망과 간절한 교육정신을 귀하게 본 나는 최선을 다하여 정국이를 졸업시키려 했다. 다 된 밥에 코 빠진다고 정국이는 담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졸업 한 달 앞두고 기어이 학교로부터 퇴학 처분을 받았다. 시편 49편 20절에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하는 말씀이 떠올랐다. 십대의 청소년 정국이를 짐승에까지 비유하고 싶지 않으나 짐승 같은 행위를 한 것은 사실이다. 이를 더욱 잘 지도 못한 나도 기도가 부족하고 더욱 힘차게 노력하지 못한 잘못도 깊이 후회했다. 아들 정국이가 절도행위로 퇴학처분 사실을 알지 못하는 정국이 어머니가 졸업식날 나를 찾아 왔다. 대뜸 내게 “우리 정국이는 졸업장 안 주는 기요”라 말하며 나를 난처하게 했다. 졸업장 못받는 사유를 세세히 일러 드렸다. 어머니는 정국이가 집에 친구들과 몰려가 담배피고 때로는 타교생과 시비 걸어 가끔 싸움하는 사실이나 절도행위 한 일에 대해서 깜깜하게 몰랐다. 바나공장에 나가 근근히 셋방살이하는 그 어머니와 상담할 시간이 없었다. 미리 알려 드리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정국이가 어머니 사랑을 알고 개과천선해서 크게 효도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위로의 말을 해 드렸다. 그러나 담임의 힘으로 정국이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아들 졸업장을 달라 조르던 어머니는 나의 진땀을 빼놓고 물러갔다. 

이제 60세가 넘었을 정국이가 회개하고 어머니께 효도한 아들이길 빌고 있다. 지금도 학교당국의 정국이 용서가 아쉽고 내게는 50년 교편생활 중에 가슴 아픈 일로 기억된다. “우리 정국이는 졸업장 안 주는 기요” 정국이 어머니 말씀이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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