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고아들의 벗, 사랑과 청빈의 성직자 황광은  목사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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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보이스 타운 < 3> 

난지도 삼동 소년시 ⑨

울산서 YMCA 회관 짓겠다고 결심

고아 200여 명 생명 도움받음에 감사

YMCA 관리 하에 삼동 소년시 구성

미군 장병들 성금, 소년시 건설 착수

나는 불현듯이 그분들을 만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나는 소년 시절부터 고아로 자라면서 항상 내 마음 구석에는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미국 군인들이 아무 연고도 없이 이국 땅에서 한국 사람들을 위해 싸우다 숨져간 병사들의 정신이 나를 늘 바른 길로 인도해 주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로 하여금 난지도 삼동 소년시에 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분들이었다. 나쁜 짓을 하지 말 것, 남을 위해 봉사할 것,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사람이 있듯이 나도 남들에게 은혜를 베풀 것 등을 가르쳐 준 것은 바로 그들이었다. 이재원 씨는 내게서 나의 성장 과정과 그리고 현재까지의 YMCA에서의 활동에 관한 말 끝에 빚을 갚는 심정으로 울산에 YMCA 회관을 짓겠다는 나의 결심을 듣고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한편, 자기가 돕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풀이해 사과했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신 후 크리스마스 때 카드를 보내주고 때로는 안마 기구 등 여러 가지 필요한 물품들을 보내주곤 하셨다. 어느 해에는 현재 울산 YMCA 회관 건축이 어느 정도 진척되고 있는가 물어 오신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재원 씨는 국제전화로 회관 건립의 구체적인 계획과 회관이 완성되면 진행할 예정인 프로그램 등을 리포트 형식으로 써보내 달라고 말씀하셨다. 내게 있어서 이것은 꿈같은 일이었다. 도움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현재 상황에서 모두가 외면하고 있는 회관 건립에 관심과 염려로 나를 위로해주는 분이 계시다는 것은 정녕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생각에 큰 기쁨을 느꼈다.

아울러 지난날 거센 파도 위의 등대불마냥 나를 지도해 주셨던 고 황광은 목사님과 사모님을 추억하며, 한국의 전쟁 고아를 위해 아무 조건 없이 미국의 제5 독립연대가 세워준 고아원에서 200여 명의 생명들이 도움을 받아 지금은 나름대로 각자의 길을 가게 해주신데 대한 뜨거운 마음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지난날 미국 제5 독립연대가 아무런 조건 없이 보이스 타운을 설립해 고아들을 도왔듯이 하나님께서 아무 조건 없이 울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안하게 이곳을 드나들며 자신들의 삶을 깨닫게 만들어 줄 회관이 건립되도록 큰 기적을 베풀어주실 것을 믿으며, 다시 한번 미국에 생존해 계시는 제5 독립연대 여러분들의 건강과 평안을 하나님 앞에 기도드린다.

다음에 3편의 기사를 싣는다.

앞부분의 두 편 곧 ‘난지도 삼동 소년시 탐방기’와 ‘난지도 소년촌 방문기’는 삼동 소년시가 설립될 당시의 르포요, 뒤의 두 ‘45년 만에 되새긴 전쟁고아 기억’은 1998년 1월에 미주판 중앙일보에 실린 기사이다.

내용중 다소 중복되는 부분이 있으나 원문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생동감이 있을 듯해 전문을 싣는다. 그리고 황광은 목사가 젊음을 바쳤던 소년시 설립 정신이 반 세기가 지나간 오늘까지 살아 있다는데 가슴 뿌듯함을 느끼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난지도 삼동 소년시 탐방기’

이 글은 난지도에 보이스 타운이 설립된 후 어느 잡지사에서 취재한 글이다. 김용호 씨가 그 기사를 가지고 있으나, 그것이 어느 잡지였는지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보아서도 소년시의 역사는 불과 30년밖에 되지 않는다. 즉, 30년 전에 미국 네브라스카에 살고 있던 아나주란 사람이 유랑하는 소년들을 모아서 소년시를 형성한 것이 소년시의 시초다. 그 후 세계 각국에서 네브라스카의 소년시를 본따서 소년시들을 많이 만들었다.

현재 우리 한국에는 6‧25동란으로 해서 많은 고아들과 유랑아들이 생겼는데 그들의 육영사업으로서 각지에 고아원이 많이 생겼고, 또한 특수한 육영체로서 소년시가 부산 가덕도(加德島)와 이번에 기자가 방문한 난지도의 두 군데에 생겼다.

난지도는 서울시 서대문구에 속하는 수색(水色)에서 서남방으로 2킬로미터쯤 가서, 한강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108만 평의 섬이다. 이 섬의 12만 평의 토지로써 YMCA의 관리 밑에 구성되어 있는 것이 삼동 소년시(三同少年市)이다.

나룻배에서 내려 기자가 소년시의 정문에 이르자, 조그만 보초병이 단정하게 보이스카우트 경례를 하며 또렷또렷하게 ‘수고하십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하고 물었다. 왕방한 뜻을 말하자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더니 본부에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정문 양측을 보니 ‘YMCA BOYS TOWN’이라는 큰 간판이 옆으로 뻗쳐 있고, 그 밑에 찾아오는 손님에게 부탁하는 시장의 말을 적은 게시판이 서 있었다. 그 게시판의 한 구절에, “과거는 묻지 말아주십시오. 우리는 희망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것을 읽고 기자는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과거는 묻지 말아달라는 말은, 곧 쓰라린 추억이 깃들어 있는 모든 과거를 청산하고 희망을 품고 살고 있으니, 과거를 회상케 말아 달라는 부탁이겠기 때문이다.

잠시 후 소년군 사령관이 나와서 기자를 시청 본부로 안내해 주었다. 정문에서 시청 본부로 통하는 20미터의 길 양쪽에는 싱싱한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후련하게 해주었다.

기자가 본부에 이르렀을 때는 전 시민들이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때였다. 잠시 후 고문의 연락을 받아 시장 김용호 군이 달려왔다. 활발하고 생기있는 당년 17세의 시장 김용호 군은 정중하게 명함을 내놓으며 세련된 어조로 인사를 했다. 아마도 그는 한국에서 가장 나이 어린 시장일 게다.

김 군은 학과가 아직 남아 있어 잠시 후에 다시 뵙겠다는 말을 남기고 다시 교실로 달려 갔다.

고문 이창식 씨의 설명에 의하면 이 삼동 소년시는 1951년 8월 12일에 개시식(開市式)을 했다고 한다. 6‧25동란이 나기 전부터 YMCA에서 소년시 창설에 대해 논의가 있었으나 자금난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동란 이후 이와 같은 사정을 들은 미군 제5 독립연대 장병들의 따뜻한 성금 2만여 달러로 소년시 건설을 착수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21동의 건물을 지어 동년 8월 12일에 개시식을 했는데, 그 후에도 동 부대에서는 또 2만 달러의 성금을 보내주었다고 한다.

개시식으로부터 불과 4년밖에 경과하지 않은 오늘날에 와서 동시에는 건물로서, 숙소(村) 15동, 교사 4동, 청사 1동, 호텔 1동, 창고 1동, 교회 1동, 병원 2동, 실로암 목욕탕 1동, 다방 2동 등이 있으며, 가축으로는 소 12두, 돼지 3, 토끼 50, 닭 90, 오리 100여 마리가 있고, 농기구는 CAC에서 원조받은 트랙터 1대를 비롯해 삽과 괭이 및 호미 등이 있다.

김희보 목사

· ‘人間 황광은’ 저자

· 전 장신대 학장

· 전 한국기독공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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