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미학] 시아버지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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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배에 첨단장비만 갖추면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줄로 큰아들은 굳게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가는 좀처럼 내리지를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큰 배를 만선으로 채울 수가 없었다. 여기에다 은행 대출금에 대한 이자는 무섭게 늘어만 갔다.

미자는 몹시도 마음이 아팠다.

그 해 크리스마스날 미자는 정성을 들여 마련한 선물에다 손을 모아 기도를 드리고 있는 그림이 담긴 카드를 넣어서 시아버지께 드렸다.

그 다음날 시아버지로부터 집으로 오라는 전화가 걸려 왔다. 왜 오라고 하시는 것일까… 미자는 조심스럽게 남편과 함께 시부모님 방으로 들어섰다.

“게 앉거라. 다른 게 아니라 어멈이 줄곧 말해오던 종교문제에 대해서 좀 말하고 싶어서 오라고 했다.”

갑작스레 종교문제에 대해 말씀을 하시겠다니… 미자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난 너희들이 준 카드를 보고 많은 것을 생각했다. 사실 난 따지고 보면 불교도 유교도 아니야. 단지 음력 정초가 되면 뱃사람은 누구나가 다 일 년 내내 아무 탈 없이 고기 많이 잡게 해주십사 하고 천지신명께 굿을 하는 게 전례니 나도 뱃사람이라 따라서 할 수밖에. 그런데 그걸 이제 와서 하루아침에 갑자기 그만두자니 그게 그리 쉬운 게 아니라서 이래저래 지나왔던 거야…”

미자는 눈시울이 뜨거워 왔다.

“네 말마따나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삶은 돼지 머리에다가 넙죽 넙죽 큰절을 해가면서 복을 빌다니 생각하면 할수록 그게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허황된 짓인지 모르겠다.”

미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아버님! 돈에 대해서 너무 걱정하시지 마세요. 그리고 저희들에게 왜 돈을 주세요? 이젠 저희들이 열심히 돈을 벌어서 부채를 갚도록 하겠습니다라고. 그러나 그것은 봉급쟁이로서는 도저히 갚을 수가 없는 엄청난 돈이라서 무어라고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버님도 돈 얘기는 아예 하시지를 않으시는가 보다.’

미자는 마음을 가다듬고 몸을 바로 했다. “아버님 걱정하시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리라 믿습니다.”

미자는 눈물을 닦았다. 아들 며느리 앞에서 일부러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것이 너무도 가슴 속을 아리게 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마치 여름 가뭄에 샘이 멎듯이 시아버지 손에서 나오던 돈이 멎고 말았다. 그것은 용돈을 꾸어서까지 줄 수는 없었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됐다싶어 남편이 아버지 쓰시라고 돈 봉투를 내밀었던 것이다.

“너,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이러는 거야! 내가 당장에 길거리에라도 나서게 됐단 말이냐?”

노발대발하는 고함소리에 질겁을 한 남편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 아버님께는 당신이 드리도록 하는 게 좋겠어. 난 틀렸어. 무조건 야단만 치시는데는 도리가 있어야지.”

몹시도 서운한 표정을 하면서 말을 했다. 시아버지들은 누구나가 며느리에겐 화를 잘 내지를 않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해서 지금까지 미자가 용돈을 드려왔었던 것이다.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받으셨어요. 이제는 당신이 아버님께 드려요.” “또 야단치시라구?” “차라리 야단을 치셨으면 좋겠어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미자는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혼잣말처럼 대답했다. 

“그럴 기력도 없으시다는 게 너무도 싫어서요…”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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