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희 선교사] 환자는 약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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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문화를 존중하기 위해 거지와 행려자를 병실에 입원시키지는 않았다. 그저 응급실에서 직접 치료해주고 무료로 약을 줄 뿐이었다. 환자들 가운데는 승려도 있고, 귀족도 있고, 평민도 있지만 내게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들을 모두 내 도움이 절실한 환자로만 대할 뿐이다. 사람이 병이 들어 환자가 되면 그가 어떤 지위와 신분을 가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환자는 모두 약자다.

하나님이 보실 때 사람은 얼마나 연약하고 무지하고 불쌍한가. 게다가 병이 들어 신음하는 사람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 그 생각을 하면 속에서 울컥하고 무언가가 올라온다. 내가 고칠 수 없으니 큰 도시로 가라고 해도 죽어도 좋으니 치료해달라는 환자 앞에서 기도밖에 할 것이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켜 주신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들을 볼 때 주의할 점이 있다. 환자가 어렵다고 함부로 돈을 주면 안 된다. 그러면 “아, 지금 죽게 생겼는데 돈 좀 주세요” 하며 계속 오기 때문이다. 몇 번 주다가 주지 않으면 그들은 등을 돌린다. 그래서 애당초 돈거래는 하지 않아야 한다. 꼭 돕고 싶으면 먹을거리를 사준다. 한번은 병원에 입원했던 형편이 매우 어려운 사람이 퇴원을 하게 되었다. 잘 먹어야 회복이 빨리 될 텐데 입원해 있는 동안은 그나마 식사를 할 수 있지만 집으로 돌아가서는 어떨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그 환자의 집에 같이 가보았다. 다 쓰러져가는 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시장에 가서 콩과 감자, 야채와 기름 등을 샀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냉장고가 있을 리 없으니 최대한 잘 썩지 않는 것으로 산다. 물가가 싸기 때문에 10달러어치만 사도 풍성했다. 내가 밤에 먹을거리를 싣고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불이 번쩍이는 오토바이를 타고가면 동네 사람들이 막 몰려든다. 그리고 가지고 간 것을 퇴원한 환자의 집 부엌에 놓아주면 동네 사람도 들어와서 본다. 얼마 되지 않는 것이지만 그 사람들은 먹을 때마다 ‘코리안 닥터’를 기억하게 된다. 나는 포카라 병원 인근에 어떤 외국인 선교사가 행려자들을 돌보는 수용소를 운영한다고 해서 종종 방문하곤 했다. 가서 보니 간염, 설사병, 영양실조, 폐렴 등 여러 가지 병에 걸린 행려자들이 많았다. 심지어 여권과 돈을 몽땅 잃어버리고 수용소 신세를 지는 외국인도 있었다. 그 수용소의 행려자 가운데 아픈 사람이 있으면 급히 나를 부르기도 했다. 나 또한 틈날 때마다 방문해서 가지고 다니는 상비약을 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인근의 거지뿐 아니라 행려자들 사이에 나에 대한 소문이 났고, 나는 그들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하루는 오토바이를 타고 아내의 부탁으로 장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내 뒤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다주!”

‘다주’란 네팔어로 ‘형님’을 뜻한다. 그냥 형이 아니라 아주 존경하는 뜻으로 부를 때 쓰는 말이다. 처음에는 잘못 들었겠지 싶어 신경을 쓰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누군가 내 오토바이 뒤를 계 속 쫓아오면서 “다주! 다주!” 하고 부르는 것이었다. 오토바이를 세우고 돌아보니 낯익은 거지가 쫓아오고 있었다.

“너 지금 나보고 ‘다주’라고 그랬냐?”

“예, 다주! 형님이 지나가시기에 불렀지요.”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고 코끝이 찡했다. 그들이 나를 다주라고 부르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카스트 제도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천한 신분인 거지들은 감히 의사를 만날 수도, 불러볼 수도 없다. 그날부터 나는 거리에서 만나는 거지와 행려자들로부터 ‘다주’로 불리기 시작했다. 네팔의 거지와 행려자들의 큰형님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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