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쉼터] 인생의 마지막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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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교인의 입관 예식에 다녀왔다. 한 교회에서 반세기 이상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교우가 이 세상을 하직하는 순간에 함께 기도하고 그의 영생을 확인하는 예식을 못 본 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나이도 만만찮으니 그런 예식에는 모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위의 권고도 있지만, 그러기에 더욱 참석해야 한다는 내 나름의 고집으로 열심히 문상하는 편이다. 예배를 드리는 동안 그동안 함께 교회를 섬겼던 추억을 회상하면서 “이제는 수고와 고통이 없는 영원한 하늘나라의 축복된 생활을 누리소서”라며 기도를 하였다. 

그러면서 최근 들어서는 비록 주일에 교회에서 잠시 얼굴을 뵙고 안부를 묻는 정도의 교제밖에 할 수 없었지만, 그의 천성같이 언제나 밝은 미소를 띄면서 즐겁고 감사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안심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약간의 치매기가 보이기는 했어도, 그리 큰 걱정을 하지 않다가 불현듯 부음(訃音)을 접하고는 ‘나이에는 장사가 없다’는 옛말을 재삼 확인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이상이 있어 병원 응급실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던 중 며칠 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큰 고통 없이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따님의 설명에 위안을 받았다. 향년 90세. 그러면서 이제는 나도 나의 여생을 어떻게 보람있게 보내야 하는가를 생각하기도 했다. 

1980년 3월 프랑스 파리의 병원에 한 남자가 입원을 했다. 그는 폐수종을 앓았는데, 한 달 동안 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고함을 지르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발악을 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 때문에 자기의 병명이 무엇인지조차 아내에게 묻지도 못했다. 그는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외치며 수많은 수필을 쓰고 또한 주옥같은 글을 남기며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던 철학자, 6.25 전쟁이 벌어지자 대한민국의 북침설을 죽을 때까지 주장하며, 죽을 때까지 북한 정권을 옹호했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였다. 

반면 독일의 고백교회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er, 1906-1945)는 세계 대전 중 독일의 수용소에서 나치에게 항거하다가 죽음을 맞았다. 2차대전의 종전이 임박했던 아직도 39살의 젊은, 4월의 어느 날, 한 간수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오자 직감적으로 자신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벌떡 일어나 감방에 있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작별 인사를 했다. “여러분, 이제 저는 여러분과 영원히 이별할 죽음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저는 주님이 예비하신 아버지의 집으로 갑니다. 거기서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감방을 나서는 그의 얼굴에는 놀라운 평안과 기쁨이 넘쳐 있었다. 이를 본 감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의 마지막 모습에 충격과 함께 큰 감동을 받았다. 사르트르는 육신이 죽었을 때 돌아갈 고향이 없기에 죽음을 두려워 했고, 본회퍼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있기에 그처럼 의연할 수가 있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남은 온전히 나의 뜻이 아니고, 나에게 닥치는 죽음도 당연히 내 의지는 아니지만, 우리는 언젠가는 죽게 된다. 따라서 닥쳐올 죽음에 두려워하지 말고 겸허하게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며, 이것이 우리가 풀어야 할 마지막 숙제인 셈이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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