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시간이 빠듯해 서둘러 버스 정류장을 향해 급히 걷는데 길가 의자에 한 남자가 더운 날씨도 아랑곳 않고 책을 읽고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옆에는 모은 종이 상자 더미가 있고 읽고 있는 것은 안내지 정도의 얇은 읽을거리였다. 하도 신기해서 가까이 갔다. 지금 책 읽으시냐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몰두해서 읽는다. 책을 좋아하느냐니까 끄덕인다. 마침 여유분의 내 책을 1권 들고 나온 길이어서 내 책을 한 권 줄테니 읽겠느냐니까 고개를 들어 쳐다보며 반신반의의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름을 물어 서명해서 책을 건네주었다.
처음 만난 갈급하고 진정한 독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가 행운이 아니라 내가 오늘 행운이라는 생각에 시간이 좀 늦어져도 마음이 편했다. 땀 범벅이 된 몸으로 37도 폭염에 햇볕 따갑게 내리쬐는 거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남자, 그를 발견하고 말을 걸어 자신의 따끈따끈한 신간 저서를 서명해서 건네주고 흡족해 하는 노파, 우연히 잘도 만난 사람들이 아닌가? 어린 시절 집에 책이 넘쳐나서 읽을거리에 배고파본 기억은 별로 없다. 하지만 어머니가 끊임없이 공급해 주는 각종 도서들도 다 읽어 치우고 책이 떨어지면 여기저기 책 빌려 볼 곳을 찾느라 정신없었던 어린 시절의 책 욕심이 그 사람을 보는 순간 밀고 올라온 것 같기도 하다.
참 기분 좋은 날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너무 안 읽는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런 반가운 독자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무적인가? 내 진심을 받아준 그 독자가 한없이 고맙다. 남이야 무얼 읽든 말든 무슨 상관이기에 말을 거는가 싶은 삐딱한 마음으로 내 물음을 외면했더라면 이런 기쁜 일은 생길 수 없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폐지를 모아 팔아 아주 적은 돈을 손에 쥐겠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틈을 내어 자신이 모아 온 폐지 더미 속에서 읽을거리를 발견하자 길에 앉아 잠시 쉬면서 그것을 읽는 사람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성실히 해서 자신의 앞길을 잘 헤쳐 나가리라 믿어진다. 저 손에 성경을 들려 주고 마음을 열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믿음이 들어가 있는 삶인지 아직 아닌지 알 수 없으나 저 독자 손에 성경책이 들리기를 기도해야겠다. 열매는 하나님 손에 달렸으니까.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