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면 마음이 조용해집니다. 높고 푸른 하늘 아래 들녘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나뭇잎이 하나둘 붉게 변해갑니다. 창문을 열면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긴 여름의 숨결을 거두고, 계절의 깊은 고요를 안겨줍니다. 이 아름다운 계절 앞에서 문득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이해인 수녀의 시 한 구절이 마음을 두드립니다. 가을의 하늘을 바라볼 때마다, 이 짧은 문장이 기도처럼 가슴 깊이 울려 퍼집니다.
무더운 여름을 지나며 지쳐 있던 우리의 영혼이 한층 차분해지고, 바람이 선선히 불면 마음도 조금은 하늘 가까이 올라가는 듯합니다. 그때마다 가을은 참으로 ‘기도의 계절’이라는 것을 깨닫고 주님께 고백합니다.
주님, 저희의 마음이 들녘의 곡식처럼 익어가게 하소서. 한 해 동안 땀 흘리며 수고한 농부들이 풍성한 결실을 거두듯 우리의 신앙도 인내와 순종의 열매로 가득 채워지게 하옵소서. 화려함보다 깊이를, 많음보다 감사함을 배우게 하소서.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연약한 우리의 믿음을 성령의 손길로 단단히 붙들어 주소서.
가을의 하늘처럼 우리의 마음도 맑게 하소서. 분주함 속 잊혀졌던 기도의 자리를 다시 세워 세상의 소리에 묻혀버린 주의 음성을 다시 듣게 하소서. 기도가 습관이 아니라 숨결이 되게 하시고 감사가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삶의 고백이 되게 하소서.
이해인 수녀는 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낙엽이 지듯이 내 마음의 욕심도 떨어져 고요히 당신께로 돌아가게 하소서.” 그 고백이 오늘 우리의 기도가 되길 원합니다. 낙엽이 떨어지듯 교만과 욕심도 내려놓게 하시고, 비워진 자리마다 사랑과 겸손이 자라게 하옵소서.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주님의 말씀만은 변함없음을 믿게 하소서. 그리고 그 말씀 위에 우리의 가정과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게 하옵소서. 이 가을에 하나님께 드리는 이 기도가 겨울의 어둠을 이길 따뜻한 불씨가 되게 하소서. 우리의 영혼이 주 안에서 깊어지고, 그 깊음이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흘러가게 하소서.
가을에는 무엇보다도 감사와 회개의 기도를 드리게 하소서. 그리고 기도의 자리에서 다시 믿음의 봄을 준비하게 하소서. 오늘도 가을빛처럼 고요히 임하시는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습니다. 모든 영광을 온전히 주께서만 받아 주시옵소서.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이 문장을 되새기며 우리의 신앙이 다시 살아나게 하옵소서. 가을의 하늘처럼 맑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그 기도가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고, 우리의 영혼을 다시 뜨겁게 하소서.
임화발 장로
<부산동노회 장로회장, 평화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