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례 문제에 대한 총회의 결론과 바울의 할례
총회를 통해 바울이 이 문제에 대해 증거가 되고 당시 지도자였던 베드로와 야고보가 이방인의 할례 문제를 정리했다(행 15:1-29).
사도 바울이 볼 때 은혜 시대에 할례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상징한다(롬 4:10-11).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이후에 할례를 받았다(롬 4:11). 그래서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지 않고도 하나님을 믿어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모든 사람의 조상이 되었다.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이 할례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조상일 뿐 아니라 아브라함이 할례받기 이전 가졌던 믿음을 좇아 사는 사람들의 조상도 된다고 말한다. 이제 할례나 무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의 본질이 중요하다는 것이다(갈5:6). 따라서 초대 예루살렘 그리스도 총회나 사도 바울은 어떤 신자도 할례를 받도록 강요하지 않았다(행 15:3-21; 갈 2:3). 표면적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이제 할례는 오직 마음에 해야 한다(롬 2:28-29). 할례의 언약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신약에서 완성되었다(빌 3:3)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시행한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서 바울이 육체적 할례를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디모데를 할례한 것이 바울의 신앙적 입장과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디모데의 어머니는 유대인이었으나 아버지는 유대인이 아닌 헬라인이었다. 하지만 디모데는 유대인 가운데서 가르침을 받았으며 그들에게 칭찬받는 사람이었다. 바울은 디모데를 유대인과 같이 여겨 할례를 실시하였다(행 16:3).
할례를 받든 안 받든 아무 상관이 없었으나, 베드로와 달리 무할례자들에게 복음 전할 자로 부름을 받은 바울이었기에 이 일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바울은 혹시라도 믿음 약한 유대파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를 오해함으로 인해 생길지 모르는 복음의 괜한 걸림돌을 제거하려는 마음이었고, 이는 복음을 향한 사도 바울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이방인이었던 디도에 대해서는 끝까지 할례를 거절하도록 함으로써 할례가 결코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본보기로 삼은 것이 그것을 증거한다(갈 2:1-3). 즉 유대인 디모데처럼 할례를 받든 이방인 디도처럼 할례를 안 받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고(갈 6:15), 사도 바울에게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하여 육체의 할례가 아닌 마음의 할례가 더욱 중요하다(롬 2:29)고 말하고 있다. 바울이 볼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할례’가 아닌 ‘믿음’이 언약의 근거였다(롬 4:9-12). 그러므로 할례는 육신에 하는 표면적인 할례가 아니라 마음에 하는 이면적 할례가 참 할례라는 것이다. 바울은 롬2: 28-29에서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할례는 마음에 할지니”라고 했다. 이는 신명기 10장 16절에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는 말씀을 근거로 한 것이다.
예레미야도 할례 받은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렘 4:4). 그러므로 신자는 이제 육체적 할례가 아니라 마음에 할례를 받아 정결해져서 하나님이 맡기신 일에 소명을 다해야 한다(롬 2:29).
오상철 장로
<시온성교회>


